배우자 50% 우선 상속 문제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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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시에 살던 주모씨는 2008년 숨졌다. 유언은 없었고 충남 태안군에 땅 5549㎡를 유산으로 남겼다. 아들 주씨(32·경기도 안성시)와 후처 김모(80)씨가 법정 상속권자였다. 법정 상속지분율에 따라 배우자인 김씨가 60%를, 아들 주씨가 40%를 상속받게 돼 있었다. 하지만 김씨가 “내가 죽으면 어차피 네 땅이 될 것이니 내 단독 명의로 하자”고 했고, 주씨가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김씨가 땅을 전부 처분한 뒤에야 주씨는 ‘법률상 새 어머니와 의붓자식 간에는 상속 권리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씨는 2011년 김씨를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지만 “김씨가 주씨를 속였다고 볼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패소했다. 결국 아버지의 유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민법은 원래 새어머니와 전처 자녀 간 관계를 ‘법정 혈족’으로 판단해 상속권을 인정했다. 하지만 1990년 법 개정 시 이 조항을 삭제하고 ‘인척’으로 적시했다. 이때부터 새어머니와 전처 자녀 간의 상속 권리 관계는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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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로 인한 법정 분쟁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 ‘황혼 이혼’과 ‘황혼 재혼’이 부쩍 늘면서 새로 형성된 가족 간의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배우자 상속분 50% 우선 인정’ 제도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법 개정 시 보완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단 법무부 추진안대로라면 배우자 몫이 크게 늘어난다. 기존에 자녀가 1명이면 60%, 2명이면 약 43%를 상속받던 데서 자녀 1명 시 80%, 2명 시 72%를 상속받는다. 문제는 결혼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유책 배우자라 해도 적잖은 상속 재산이 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다. 수원지법 가사2부는 강모(89)씨가 아내의 전 남편 소생 자식 이모(55)씨 등을 상대로 낸 상속 재산분할 소송에서 “이씨 등은 5억여원을 배상하라”고 2012년 11월 판결했다. 이유는 “법적으로 부부인 만큼 강씨는 공동 상속인으로 상속권이 인정된다”는 것이었다. 이씨의 새아버지인 강씨는 재혼한 아내가 치매에 걸리자 집을 나가 따로 살았다. 2008년 아내가 숨지자 상속 재산 27억원 가운데 자기 몫을 달라며 소송을 내 이긴 것이다. 법무법인 세종의 최명호 변호사는 “배우자를 나 몰라라 한 상대방이 상속분을 요구할 때 적절히 거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무부 장영섭 법무심의관은 “재혼 기간이 짧든지, 오래 떨어져 재산 형성에 기여한 게 없는 경우 우선상속분 50%를 다 안 줘도 되게 하는 방안 등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배우자 우선상속분 50%를 ‘유류분’에 포함시킬지도 관심거리다. 유류분에 포함시킨다면 배우자나 자녀들이 각각 주장할 수 있는 상속 재산의 규모가 커진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배우자 우선상속분이 유류분에 포함되면 ‘가족 분란의 뇌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박민제·심새롬 기자

◆유류분(遺留分)=배우자나 자녀가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상속분. 법정상속분의 절반까지 인정된다.
◆유책(有責) 배우자=결혼생활이 비정상적으로 파탄나게 하는 데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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