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의 「완벽한 전화」도 탈 날 때가|어쩌다가 정전되니 세상이 온통 동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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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전화가 잘된 나라일수록 정전에서 오는 열량은 크다. 수은주가 영하12도까지 급강하한 11월4일 내가 사는 「캐나다」B·C주 「포트·세인트·제임즈」일대 지역에 예고 없이 전기가 나갔다.
바람이 몹시 불거나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끔 한 두 시간씩 정전이 되는 경우가 있어 곧 들어오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상오 11시에 나간 전기가 하오 5시가 넘어 방안이 어두워지는 대도 영 소식이 없다. 「찰즈」네집 「메리」네집 모두 야단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밥을 지을 수 없고 추워서 동태가 될 판이기 때문이다.
GNP 세계 제2위라고 하는 이곳 「캐나다」에선 80% 이상이 전기「레인지」(일종의 곤로, 한꺼번에 4개의 요리가 가능)를 쓰고 나머지 20%만이 「가스」곤로로 요리해 먹는다.
전기가 안오니까 집집마다 「피크닉」이나 사냥갈 때 쓰던 「프로판·가스」곤로를 꺼내 밥을 짓느라 수선을 떨었으며 우리 집은 6·25때 피난민 식으로 뒤뜰 한구석에 큰돌 3개를 놓고 나무를 패서 겨우 저녁밥을 해결했다.
또 이곳 일반주택의 70%가 천연 또는 「프로판·가스」를 이용. 가열된 공기를 전기 「팬」으로 각방에 보내는 온기로 난방을 하고있으며 그밖에 20%가 직접 전기「히터」난방, 단10%만이 「오일」이나 나무를 이용한 「스토브」식이다.
정전만 되면 전 난방의 90%가 동결되어 실내온도가 영하로 덜어질 지경이니 집집마다 아우성인 것은 당연하다.
조명문제만 해도 95%이상이 전등이니 집안은 물론 길거리까지 일시에 암흑이다.
이윽고 6시 좀넘어 전기가 들어오자 지하실의 온기로 「팬」은 기다렸다는 듯이 요란하게 돌기 시작하고,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면서 6시부터 시작하는 「디즈니」 「프로」를 보기 위해 TV「스위치」를 켠다.
오늘처럼 전기없는 날에는 전기에 관계없이 밥지어먹고 따뜻한 아랫목에 몸을 녹일 수 있는 한국의 내고향 초가집이 유독히 그리워졌다. <캐나다=이원종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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