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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최경주에게 첨단 무기 준 '딤플 박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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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골프공의 비행을 예측하는 건 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우주왕복선의 탄도학보다 어렵다고 한다. 인류가 달에 간 지 44년이나 됐지만 지름 약 4.2cm인 골프공의 비행 원리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골프공에 대해서는 천하의 아이작 뉴턴이나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속수무책인 셈이다.

 일본에 있는 던롭스포츠에서 골프공 딤플(dimple·골프공의 표면에 오목오목 팬 작은 홈)을 연구하는 김형철(40·사진) 박사는 그래서 골프공 연구에 파고들었다. 지난주 휴가차 방한한 김 박사는 “비행기 날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고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욕심이 났다”고 말했다.

 전북대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한 김 박사는 일본 도호쿠대학에서 항공우주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골프공 연구에 빠졌다. 박사학위를 받고 던롭스포츠에 입사한 그는 박인비·최나연·최경주 등이 쓰고 있는 던롭 스릭슨 공의 개발에 참여했고 이 회사 차세대 볼 딤플을 디자인하고 있는 에이스 연구원으로 성장했다. 그가 만든 특허는 약 20개. 박인비·최경주가 007 제임스 본드라면 김 박사는 그들을 위해 첨단 무기를 제공하는 박사인 셈이다.

 골프공의 비행예측이 어려운 건 딤플 때문이다. 18세기부터 골퍼들은 흠집이 생긴 오래 된 볼이 말끔한 새 공보다 더 멀리, 더 똑바로 날아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과학자들이 그 이유(흠집이 있으면 공이 나아가는 부분과 뒷부분의 압력차가 적어져 속도 감소가 줄어든다)를 설명할 수 있게 된 것은 50년 후의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홈의 깊이, 넓이, 모양, 배치 방법 등에 따라서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속시원하게 풀어주는 원리는 규명되지 않았다.

 김 박사는 “비행기나 미사일은 유선형이고 회전하지 않는데 골프공은 동그랗고 회전하기 때문에 원리를 규명하기가 훨씬 어렵다. 딤플은 더 그렇다. 축적된 경험으로 딤플의 깊이가 얕을수록 뜬다는 사실 정도는 알지만 원리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의도로 딤플 디자인을 해도 공을 쳐보고 나서야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야구공의 실밥, 축구공의 가죽 접합 부분도 딤플 역할을 한다. 다른 스포츠에서도 공을 연구하는 사람이 많지만 골프공 연구 인력이 가장 많다. 전 세계적으로 골프공 딤플 연구자만 수천 명으로 추산된다.

 그가 만든 공으로 박인비가 3연속 메이저 우승의 주인공이 됐듯, 김 박사도 자신이 딤플의 물리적 원리를 규명해 ‘딤플의 뉴턴’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김 박사는 “10년 동안 연구하면서 원리 규명에 필요한 단서를 모으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면 매듭을 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골프공 박사지만 정작 자신의 골프 실력은 “형편없다”고 했다. 골프공을 치는 것보다 공 딤플을 연구하는 것이 더 재미있단다.

글·사진=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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