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민영화 논리, 의협 내부서도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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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의사협회는 12일 정부가 추진 중인 원격의료 및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 정책에 반대해 3월 3일부터 총파업(집단휴진)을 결의했다. 이에 보건복지부 이영찬 차관은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히 대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열린 노환규 회장(왼쪽)의 회견 도중 한 시민이 파업 반대를 외치다 제지당하고 있다. [최승식 기자]

대한의사협회(회장 노환규)가 3월 3일 집단휴진(총파업)을 하기로 결의 했다. 의협은 11~12일 전국 의사 대표자 5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이촌동 의협회관에서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위한 전국 의사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이같이 결의했다. 의협은 다만 정부의 입장 변화에 따라 집단휴진을 유보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또 자신들이 의제와 조건을 제시한 뒤 정부가 수용하면 대화에 나서기로 했다. 의사 집단휴진 방침은 2012년 7월 포괄수가제 확대 시행에 반발해 수술 거부를 내세운 지 1년9개월 만에 나온 것이다.

 의협이 집단휴진하려는 건 정부의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에 반대해서다. 노 회장은 12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의 원격의료와 영리병원 추진을 반대하고 왜곡된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원하며 우리의 정당한 요구가 관철되도록 총력을 모아 투쟁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정부 입장 변하면 유보할 수도”

 노 회장은 “회원들이 2000년 시행된 의약분업보다 원격의료에 대해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환자-의사 간 원격진료가 허용돼 있지 않지만 앞으로 사전에 대면(對面) 진료를 한 노인·장애인 환자에게 제한적으로 원격 진단과 처방을 허용하겠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또 고혈압·당뇨 같은 52개 경증질환으로 제한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협은 “환자의 70~80%가 (제한한 범위 안에) 들어간다”고 반박한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에 동네의원이 2만 개가 넘어 원격의료 효용이 높지 않고, 노인이 첨단장비를 다룰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한다.

 의료법인 자회사와 관련, 정부는 지금도 학교법인 소속 대학병원들이 직접 하거나 자회사를 통해 장례식장·음식점·숙박업 등을 하고 있는데 여기에 첨단 의료기기 개발, 해외환자 유치, 해외의료 진출 등을 추가하는 것이어서 의료의 공공성이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한다. 하지만 의협은 “외부자본이 의료법인 자회사에 투자하면 투자자의 수익을 맞추기 위해 의료기관이 무리수를 둘 것”이라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병원장은 “지금의 의료법인 경영상태로 봐서 누가 돈을 투자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의협이 원격의료와 의료법인 자회사 허용이 의료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저지를 위한 집단휴진을 하겠다는 결정에 대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지역의사회장은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건강보험 제도가 있는데 그걸 없애고 민영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 선에서 ‘민영화 줄타기’에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 동력 없어 집단휴진 미룬 듯

 집단휴진 결의 한 달 반 뒤로 시행일을 잡은 것을 보면 실행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내부 동력이 없다 보니 멀찌감치 미뤄둔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 회장 자신도 “정부와 협의할 시간이 필요하고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의협의 한 간부는 “섣불리 파업을 꺼낸 것 자체가 잘못이다. 2012년 포괄수가제 반대 수술 거부를 내세웠다가 유보하면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휩싸인 적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 “불법 파업 용납 안 해”

 보건복지부 이영찬 차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의협이 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하겠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불법파업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여러 차례 공식회의에서 ‘의료 민영화’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고 거듭 강조해온 만큼 ‘의료 민영화’ 논리에 대해선 적극 반박하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원격진료는 전방이나 산간오지 같은 곳처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서민들에게만 허용해주겠다는 것”이라며 “병원 수익사업의 경우에도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내고 그 돈을 병원 운영에 써서 환자들에게 받을 진료비를 높이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의사협회의 집단휴진에 대해선 궁극적으로 의료 수가를 높이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새누리당은 정부와 의사협회 사이에 대화채널을 즉각 가동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나섰다. 지지기반이라 여기던 의사 집단이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배경에 깔려 있다.

신성식 선임기자, 천권필·정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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