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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축·가족부양 공제제의 도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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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민 복지 연금법의 국회 심의를 앞두고 근로자에 대한 각종 부담의 과중성이 새삼 문제시되어 세제의 근본적인 개혁이 절실한 정책 과제로 대두하고 있다.
근로자는 현재까지 최하 7%의 갑근세와 2%의 국민저축조합 저축을 부담하고 있었는데 명년부터 이밖에 3%의 국민 복지 연금이 추가되면 모든 근로자는 그 급전의 최소한 12% 이상을 공제 당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민저축조합 저축과 복지 연금은 장래의 선수를 전제로 한 저축이긴 하지만, 근로자의 소득에서 원천 공제된다는 점에선 동일하다.
근로자에게 생계의 여유가 있어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은 개인을 위해서나 국민 경제를 위해서나 매우 소망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기본 생계에도 미달되는 봉급을 받는 자까지가 과중한 저축을 강제 당하게 됐다는 점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우선 우리 근로자가 부담하는 세금, 즉 갑근세만 해도 법인기업의 그것에 비교가 안될 정도로 과중한 것이다. 명목세율만을 보면 갑근세가 높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나 기업의 이익만을 대상으로 하는 법인세와는 달리, 갑근세란 근로자의 전 소득 외형을 과세대상으로 하여 한푼도 빠짐없이 포착되어 원천 공제된다는 점에서 실정 부담은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기업 등에서 인정되는 각종 손비는 물론 기본적인 가계비용조차 인정 안 된다.
서울시의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액이 5만원 가까이 되는데 반하여, 기초 공제액은 1만5천 원밖에 안 된다. 특히 우리 나라 갑근세의 누진율은 가혹할 정도로 높아 명목상의 소득액이 5만원만 되어도 무려 12%(실효 세율 7%)의 누진율이 적용된다.
이는 다시 말해서 월 소득 5만원을 받는 자는 그 12%를 원천 공제 당한다는 것으로, 이것은 어느 면으로 보아도 근로자의 부담 능력을 감안치 않은 높은 세 부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가 확정한 국민 복지 연금법은 우선 현 근로자 가계가 3%의 추가부담을 능히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다고 판단한 발상자체부터가 큰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중화학공업 개발을 위한 막대한 대금 조달의 고충을 모르는바 아니다. 그러나 근로자들의 기본 가계의 보장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중화학공업 개발의 중요성보다도 훨씬 더 긴요한 정부의 원초적인 매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중화학공업 개발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그것이 근로자의 과중한 부담 위에서만 수행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근로자에게 검약과 내핍을 강요하려면 정부당국이나 기업 측에서도 그러한 각오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런데 74년도 예산안이나 최근의 기업실태를 보면 유감스럽게도 그런 공감을 느낄 수가 없다. 정부는 기업의 자본 축적에 의한 고도 성장을 기하려면 근로자의 어느 정도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고도 성장의 근본적인 목표가 국민생활과 복지의 향상에 있음을 깊이 인식한다면 어떤 명분으로도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 연금 등 강제 저축의 확대는 그에 상응한 근로자 조세 부담의 경감을 필요로 한다.
적어도 기본 생계는 보강될 수 있도록 저축 공제제·가족부양 공제제 등의 도입은 이제 천연할 수 없는 정책과제가 된 것이다. 갑근세 부담의 경감이 세수 결함을 가져온다는 정부 당국의 변명은 금년 들어 8월까지 기업에 대한 조세 감면이 2천2백억 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결코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조세형평의 원칙이나 사회정의에 비춰서도 근로자에 대한 과중 부담은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근로자 가계의 보호는 정치적·사회적 안정의 기반이 되는 중산층 육성과도 직결되며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인간의 존엄성 문제와도 상통됨을 알아야 할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형평에 어긋난 과중부담으로 인한 근로자의 불만과 좌절감 및 성장 혜택의 소외의식은 개발 계획에 대한 자발적 참여 의식을 근본적으로 저해할 것이다.
정부 당국은 근로자의 각종 부담 문제를 단순히 재정 수요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에서 다루어야할 것임을 거듭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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