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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대·활자 추정 틀림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11월2일자 모 조간에 차주환·김원용 두 박사의 의견을 인용한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도서의 정확한 확인 판정은 실물을 직접 보고 난 다음이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을 단정하려면 문헌사 내지는 서지사적인 배경이 있어야 되며, 어문학 연구 자체가 서지학의 뒷받침 없이는 이루어 질 수 없다는 것이다.
『고문진보 대전』만 하더라도 이 고려 활자본이 발표되기 이전에는, 안평대군의 글씨로 된 경오자 용자 본이 있어 세종 32∼문종 2년경(1450∼1452)에 이미 인쇄되었음이 알려져 서울대 일사 문고와 고려 대학 신암 문고에 수장되어 있으며, 필자가 편한 『한국 서지 연표』에도 임진 전 이전에 3회, 그 이후에도 1910년까지 5회나 기록이 나오며, 갑인자·정유자·정리자로 인쇄된 활자본이 현존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고려말에 인쇄된 것이 현존하고 있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임진전 전에 목판으로 간행된 곳만 해도 전주·순창·진주·창원·평양·함흥 등 여섯 곳이나 『고사촬요』에 기록되어 있어 전기 『한국 서지 연표』의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
『중국 학예 대사전』에 의하면 중국에서 송대에 이미 백정에 의해 음석이 이루어진 것이 있으며, 이미 원명간에 성행했다 했으니, 그 이전에 통행하였다는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이번에 출현된 고려 활자본이 음석이 없다는 점도 일고의 여지가 있다.
위와 같이 중국에서는 말 할 것도 없고, 우리나라에서도 임진전 이전에 성행되었던 음석·교정본이 있는 이상 저자가 임진전 당시인이라는 견해는 옳지 않으며, 이는 아마도 『학술 대사전』에 인용한 『고문대전』과 혼용하고 있는 것 같다.(중국 책에는 이렇게 서명이 비슷한 것이 많다.)
그리고 자체는 금석문에서도 나타나지만, 주자에서도 약간 쌍형이 되는 것이며, 송인의 필체가 하루아침에 고려인의 필체로 되는 것이 아니다.
소위 『병자 자를 모방한 목자』의 문제만 하더라도 지금 서지학계에서는 「방병자자목활자」라는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이에 대해서 필자는 그것이 「방병자자방주자간혼목활자」라고 고쳐 부르기로 하고 있거니와 이 활자로 찍은 책으로는 청천몽암이 편한 『표제음주동국사략』 『조종시율』 『송시정운』 『신편대동련주시격』 『신편류취대동시림』 『동국사략』(위와 다름) 등은 분명하며 그 이외에도 『책문』 『당송련주시격부록』 『역대문서선책』 『첩산선생비점문장궤범』 『삼소문』 『전책정수』 『이천격양집』 등이 알려져 있거니와 『이정대서』 『송원사략』 『조천창수록』 등도 고구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중이다.
이를 「방병자자방주자간혼목활자」라는 일군의 활자본과 이번에 새로 발표된 고려 활자본인 『고문진보대전』의 전부를 필자는 실사하였거니와 그 활자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치밀하고 원시적임을 알 수 있다.
활자 감정과 그 복원에 대하여는 손보기 박사가 실학 강좌에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인데서 발표회를 가졌고, 또 많은 천연색 「슬라이드」나 확대사진을 제시하였기에 생략하거니와 연도의 추정 결과는 맞는 것으로, 활자본의 기원에 대해 필자가 종래에 주장하던 고려의 문종시에 더욱 접근하고 있다.
또 전녹생이 『고문진보』를 들여왔다는 주장도 그의 문집인 『야거선생일고』에는 『전주고문진보』를 들여왔다고 있어, 주가 없는 원형의 『고문진보』의 유입은 이보다 오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녕의 「녕」자만 하더라도 열이 자로 전각 될 수 있는 경우와 같으며, 손 박사가 발표 시에 『동일인으로 확인된다면 연도 확정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강연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고려 활자본의 발표는 어디까지나 학자적인 태도에서 학술 발표회에서 발표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론 제기가 보다 신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에서의 금속 활자의 발명은 어디까지나 우리민족의 슬기로움으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며, 필자는 그것이 청자나 훈민정음의 창제보다도 더 큰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고려 활자본 『고문진보대전』의 발표를 기뻐하며, 이 책은 고려 활자본이 틀림없다고 단정한 미국 합불연경학사의 백린학형의 탁견과 수고하신 손보기 박사, 수장자 조병순 선생께 감사하고 싶은 바이다. 【윤병태 (고대 중앙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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