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0)제32화 골동품비화40년(3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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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내가 본 일품들>
연전에 작고한 이병직씨는 아주 온유한 성품의 선비 풍의 인물이었다. 평생 서화 골동을 극진히 좋아해서 깨끗한 물건을 많이 가졌었다 .해방 전에 원남동에 살았었는데 한 달에 한번정도 그 댁에 들러서 그가 소장한 물건을 구경하였다.
이병직씨의 골동가운데 접시하나가 아주 일품이어서 내가 늘 탐내 마지않았다 줄무늬가 있고 가운데에 청화로 장미를 그린 이 접시가 어찌나 갖고 싶었던지 90원에 팔라고 여러 번을 졸랐건 만 끝내 1백60원에 어느 누구에게인지 넘겨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대원군의 난초만은 김효식씨를 중간에 넣어 3년간 공작을 꾸민 끝에 20만원에 넘겨받았으니 과히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씨가 가진 서화 가운데 추사의 글씨 한 점은 아주 소중히 여기든 것으로 해방직후 손재형씨가 인수하였다
그때 이시영씨가 그 글씨에 발문을 적어 넣는 것을 직접 구경한 일이 있다.
해방 전에 선린상업학교 선생으로 있던 일본인 산하도 상당한 수장 가였다. 그가 가지고있던 산수문 제기접시는 썩 좋은 물건이어서 나는 그를 볼 때마다 달라고 했건만 시종 묵묵 부답이었다. 그 접시는 발굽의 안쪽에 철사로 「재롱」이라고 쓰여있어 비슷한 유품을 찾을 수 없는 귀물이었다.
수복 후에 의의로 인촌 선생 댁의 벽장에서 그 접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댁 벽장 속에는 정리가 제대로 안된 채 청화로 파도문양을 그려 넣은 국보급 장방형 연적이며 역시 청학로 장식한 12첩 반상기 한 벌이 멋대로 쌓여 있었다. 나는 인촌 선생의 부인에게 고대박물관에 기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넌지시 권유를 해 보았다.
산하와 내가 주전자 한 쌍을 놓고 서로 탐을 내던 일도 일화가 될만하다. 즉 해방되기 여러 해전에 K씨의 골동 상에 들렀다가 청화로 산수를 그린 주전자 한 쌍을 보고 어찌나 갖고 싶었던지 한동안을 머뭇거린 일이 있었다.
그때 산하도 그 물건을 눈여겨보면서 살 듯 말듯 해서 나는 속을 쥐어짜는 것처럼 조마 조마 했다한데 2백80원이나 되는 곳가여서 그때의 처지로 선뜻 내놓을 액수가 못되었다.
그날 저녁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다시 K씨의 가게에 달려가니 이미 산하가 사가 지고 가버려 주전자가 있던 자리만 휑뎅그렁하니 비어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서운해서 한동안을 엉거주춤 했다. 분한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었음은 물론 이다 .해방 후 그 주전자는 역시 의외로 황씨 가게에 나왔는데 청화로 그린 세화가 한층 돋보이는 듯 구우를 만난 듯 반가 왔으나 근배는 나의 얼기도 가셔서 가지고 싶은 생각이 이미 시들해지고 만 뒤였다.
언젠가 제기 접시 비슷한 사기그릇이 있었는데 그 기형이 아주 재미있어서 잊혀지지 않는다. 마치 촛대처럼 생겼는데 한가운데에 돌기 상으로 솟아서 그 속이 움푹 팬 모양 때문에 그 용도가 심히 궁금치 앉을 수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움푹 팬 속에 조청을 담아서 떡을 찍어 먹도록 고안한 겻 이었다.
창낭이 4백원을 주고 샀던 진사접시도 귀물이었다. 진사로 그린 장미꽃의 발색이며 청화로 그린 뿌리의 모습이 식물과 혼동이 될 만큼 사실적이었다. 그러나 환도 후 창낭댁에 화재가 나서 불이 꺼지고 난 뒤 앙상하게 산화한 형체만 남아 참으로 애석하게 여겼다
역시 창낭이 수장하고 있던 청학주전자는 유례가 드문 귀물이었다 앞서서 본 난에 내가 가지고 있는 백자주전자가 사진으로 소개된바 있지만 그 주전자와 한 쌍을 이루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기형이 비슷하고 뚜껑을 열쇠로 잠그는 장식이 붙어 있는 까닭이다. 창낭은 둘 중에 하나를 K씨를 통해서 내게 넘겼다. 그런데 창낭이 가진 것은 청학의 무늬가 있고 수구마저 덮어씌우는 쇠장식이 붙어 있다. 나는 이 주전자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한다
첫째로 말기에 들며 우심해지는 세도정치로 인연해서 궁궐 안팎을 싸고도는 외척의 발호가 오죽이나 심했으면 그릇에마저 이렇게 거추장스러운 장식을 해서 열쇠를 잠그게 했나하는 점이다. 분명히 동궁마마가 음용하는 그릇에 비상을 쏟아 넣을까 하는 우려에서 이런 장치를 했을 것이다.
둘째로 옛날사람의 우직스러운 단면을 엿보게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요새 같으면 그릇 따위에 아무리 그런 장식을 철저히 해도 주사기하나로 몇 방울 정도의 비상을 흘리면 인명을 좌우하기가 그리 어렵지 않은가 한다. 하여간 권세를 둘러싸고 원귀의 앙칼진 독기가 서리는 민방의 서릿발을 감축케 하는 듯한 기분 때문에 과히 좋지 않은 주전자이다.
의사노릇을 하는 한편 40여년 동안 도자기에 취미를 갖다 보니 이제는 신변잡담까지 적게 되었지만 그 동안에 도자기를 통하여 얻은 것이 있다면 우리의 것을 알게되었다는 점이다.
또 내 나름대로는 힘껏 모아서 지금 몇백 점을 가지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이렇다할 물건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그 정도나마 옆에 두고 볼 수 있었던 것만도 큰 행복이었다고 감사하며 앞으로도 잘 보존 되여 여러 사람이 보게되기를 바랄 뿐이다. <끝><제자 박병래>

<다음은 기독교청년회의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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