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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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인간과 마찬가지로, 나라에도 특이한 성격이 있다. 인간의 감정에 끼치는 효과는 나라마다 심한 차이를 보여준다. 그 중에는 재산을 모으기엔 좋지만 애착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나라가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일할 나이가 지나면 그동안에 벌어 놓은 돈을 싸 가지고 다른 고장으로 떠나버린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의 경우도 있다. 재물 같은 것은 제공해 주지는 않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는 나라가 있는 것이다. 비록 몸은 타향에 있지만 언젠가는 그곳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경제적인 압력이나 무력에 의해 쫓겨났을지라도 그 나라와의 인연을 끊어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평생을 두고 고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결의에 차있으며, 자신의 연대에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면 자손에게 그 결의를 심어준다.
이런 매력을 가진 나라가 많지는 않다. 그 중의 하나가 「팔레스타인」-. 이 나라는 어딘가 최면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영국 사학자 「아널드·토인비」의 세계 기행문을 엮은 『동쪽에서 서쪽까지』에 나오는 얘기이다. 「토인비」박사는 『「팔레스타인」의 매력』 이라는 기행문에서 바로 그렇게 서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BC 2세기께 「필리스티아」(Philistia)인이 이 지방에 정착해 살면서 그 명칭이 생겼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가 지금부터 8, 9천년 전부터 이 고장엔 줄곧 많은 민족들이 넘나들었다. 그 중에서 오늘날까지도 「팔레스타인」의 매력을 잊지 못하는 민족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이란, 역사적으로 말하면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 제국의 건설자인 「네브가도네자르」에 의해 멸망된 「팔레스티나」 소 왕국 유태의 국민과 그들의 직계, 아니면 양자들의 자손을 의미한다.
「토인비」 박사는 현재 「팔레스타인」의 땅위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 국민이나 서구 제국에 이산된 유대인은 변질의 시간을 겪으면서 비유대 화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인을 자칭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전통적 유대인의 이방인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접어들어 세계 대전이 벌어진 동안 강국들은 이 역사의 미아인 초토를 놓고 이해를 다투었다. 「이스라엘」은 그런 이해의 소산이다. 그러나 역사의 기대 속에서도 이 고토를 지켜 온 「아랍」인들은 그것에 반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전쟁까지 치렀다.
그동안 「팔레스타인」의 고토를 지키던 「아랍」인은 난민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무려 백만 명에 이르는 대군이다. 「토인비」 박사는 이들을 『새로운 유대인』이라고 말한다. 만일 미·소의 견해대로 지금 「팔레스타인」국이 성립된다면 중동엔 또 하나의 대립 세력이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토인비」의 기행문엔 이런 얘기가 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정의다. 우리는 부당하게 집과 땅을 빼앗겼다. 원상회복, 그것만이 우리가 수락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다.』실로 「팔레스타인」을 그리워하는 『새로운 유대인』의 결의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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