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치매 간병에 무너지는 가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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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

70대 할머니의 목소리가 잔뜩 날이 섰다. “치매 환자 돌보는 데 뭐가 가장 힘드세요?” 기자의 질문에 “내가 우리 아저씨(남편) 흉보면 밥이 나옵니까 빵이 나옵니까. 내 탓이라 생각하고 살랍니다. 끊습니다.” 10분가량 설득해도 마음을 열지 않았다.

 8~9일 치매 환자 가족 7명과 전화통화를 했다. 누군가의 남편 혹은 아내, 자식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 때문인 듯했다. 하루가 지나 할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말하면 (도움을) 바라게 되고, 그러면 나만 더 괴로워져서….” 할머니는 이내 목이 메었다.

 남편의 치매는 5년 전 시작돼 지금은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다. 오후 1~5시 하루 4시간 요양보호사가 집에 머문다. 할머니가 허리 통증을 치료하러 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나머지 시간은 할머니 몫이다.

 그나마 할머니는 상황이 나을 수도 있다. 지난해 보호를 받아야 할 치매 노인 47만 명 중 절반이 넘는 28만9000명(61%)이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다. 경증이어서 심사에서 탈락한 사람이 많다. 몰라서 신청을 하지 못하거나 기준이 까다롭다는 얘기를 듣고 아예 신청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내 식구를 남한테 보이기 싫다’는 사람도 있다.

 우리나라 노인 10명 중 한 명이 치매를 앓는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치매 환자는 2030년에는 127만 명, 2050년에는 271만 명까지 늘어날 것이다. 치매 간병의 고통을 오롯이 받아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식구가 있어 몇으로 나눌 수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경제적·정신적 부담을 모두 맡기는 건 너무 잔인하다. 처음에는 ‘어떡하든 병을 고쳐보겠다’는 마음으로 간병하지만 1, 2년 지나면 한계에 봉착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우울증으로 치닫는다. 혼자 간병하는 경우는 더 쉽게 노출된다. 치매 어머니를 목 졸라 숨지게 한 아들도, 치매 아내를 차에 태우고 함께 저수지로 돌진한 남편도 모두 혼자였다. 10년째 치매 남편을 돌보고 있는 한정희(55·여)씨는 “세상에 우리 둘밖에 없다는 순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고 했다.

 올해 우리나라의 복지비용은 100조원, 국민의료비는 100조원을 넘었다.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가는 걸까. 노인의 6% 정도만 장기요양 혜택을 본다. 대상자를 더 늘려 경증 치매 환자와 가족을 보듬어야 한다. 경증부터 관리해야 악화 속도를 줄일 수 있다. 그게 장기적으로 돈을 아끼는 길이다. 가족들이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수 있게 주간·야간 보호센터도 늘리고 수가를 현실화해야 한다.

김혜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