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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주섭일 특파원 「카이로」서 제1신-정적과 암흑 불안 속의 평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전시하의 「카이로」의 표정은 꽤나 긴장했던 본 기자가 보기에는 뜻밖에도 평온했다.
6백만의 「카이로」 시민들은 여느 때같이 그들의 생활을 영위하는 듯 분주한 모습들을 보였고 대로에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붐볐으며 모든 길은 통행금지 없이 자유롭게 열려있었다. 그리고 배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일」강의 풍경도 몇 달 전에 왔을 때나 다름없었다.

<사진촬영은 절대금지>
본 기자가 묵고있는 「나일」강변의 「힐튼·호텔」 「로비」나 「바」에는 특파원들을 위해 각종 신문과 「라디오」·TV가 마련되어있다.
특파원들은 저녁에 「위스키」를 들면서 전황을 듣고 보는 것이다. 모두가 전장을 직접 취재하겠다고 달려왔을 터인데 하나같이 팔자 편한 취재 활동을 하고있는 셈이다.
「이스라엘」의 정보활동을 분쇄하기 위해서인지 사진을 찍는 것은 일체 금물이다. 「호텔」의 「텔렉스」도 특별 허가 없이는 못쓴다.
외교관들도 집과 공관이외에는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요구됐다. 심지어 외국인과 전화하는 것까지 금지시켰으니 어떻게 보면 너무했다 싶기도 하다.
「이집트」정부로부터 종군 기자증을 받기는 했지만 「카이로」에서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것이다.
21일 낮12시에서 1시 사이에 시내의 TV「센터」에서 기자회견이 있다. 모든 전황취재는 이곳에서만 하게 되어있다.
기자회견에 나온 「무크타르」장군은 「이스라엘」군이 「수에즈」운하에 3개의 다리를 세운 후 도하했으나 「이집트」군이 이 돌다리를 폭파한 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국제전화 번번이 실패>
현재 「이스라엘」군은 「수에즈」서안에 2개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이집트」군이 이미 80대의 「탱크」를 부쉈으며 포위망을 압축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도착한 후 사흘동안 「런던」과 동경에 국제전화를 하려고 시도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구미의 특파원들이 뻔질나게 본사와 통화하는 것으로 봐서 아마도 한국인 기자에 대한 특별대우가 아닌가싶다. 그들과 취재전쟁을 벌이지 못하는게 억울했지만 도리가 없다.
「호텔」의 창에서 내려다보면 길거리를 따라 어슴푸레한 푸른 불빛이 떠돈다. 자동차의 「헤들라이트」에 파란물감을 칠해놓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암흑의 광야에서 표류하는 유령의 모습처럼 오히려 요기로운 공포감을 더해준다.

<카이로시민 태연자약>
이곳에 도착한지 사흘째지만 공습경보를 들은 것은 20일 정오에 한번뿐이었다. 그것도 「로이터」통신지사에서 알아본 즉 「카이로」에 적기가 근접했다는 신호였다고 한다.
시민들이 눈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던 것이 우스워졌다.
그러나 이들이 이토록 태연한데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는 듯 했다. 「미사일」망에 대한 자신감이 그 점이다.
내가 보기에는 이들 신형 「미사일」은 그들 자신이 움직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이번 전쟁에서 이들이 끼친 영향이란 참으로 컸다.
어젯밤 TV에서 「이스라엘」조종사 포로 두명이 출연했다.
그들은 아주 비감한 표정으로 미국인들이 어떻게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가를 폭로했다.
5개월 전에 이곳에 들렀을 때는 「나일」강 주변의 야경이 참으로 인상깊었었다.
유람선의 오색찬란한 불빛이 강물에 얼비치고 가로등의 행렬이 대각선의 그림자를 일렁거리는 그 광경이야말로 고도의 밤을 풍요롭게 하기에 족한 아름다움이었다.

<「이」포로 TV에 출연>
그러나 전쟁 아래의 「나일」강은 완전한 칠흑일 뿐이었다. 일렁거리는 불빛대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심연이 있을 따름이었다.
「카이로」의 밤은 그야말로 경적과 암흑이 지배하지만 시민들의 표정은 결코 불안하지 않았다.
군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은 아마도 「카이로」의 방공망을 강화하기 위한 것인 듯 싶었다.

<무기수송엔진 소리만>
가끔씩 대형 수송기의 독특한 「제트·엔진」소리가 귓전을 때린다. 소제 「안토노프」기가 군수물자를 나르느라고 이곳 상공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안토노프」기의 소음과 TV에서 미국인의 개인을 폭로하던 「이스라엘」 포로의 모습은 이 전쟁의 진실을 말해주는 2개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카이로=21일 주섭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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