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8)제32화 골동품비화40년(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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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강산 연적>
외우 함석태씨는 성품이 온아 하고 다감한 인정을 가진 분이었다. 나보다 여러 해 손위였으나 피차 「선생, 선생」하면서 간절하고 신애가 넘치는 존경심으로 대해왔다.
그는 실로 감읍 할 정도로 골동에 애착을 가졌던 분이다. 흔히 취미는 취미에 그치고 요즈음에 무엇을 모아본다는 것은 물질우위의 풍조가 어쩔 수 없이 작용해서 환금의 값어치나 그로 인해 얻어지는 관능적인 열악을 꾀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함씨가 골동에 들인 정성은 정혼을 기울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침·저녁 신들린 사람처럼 골동을 부비며 애완 하는 모습은 일견 사기그릇의 반질반질한 멧물(유약)의 표면을 뚫고 왕래 소통하는 정신의 소작인 것 같기도 했다.
동업 의우라고 하나 내과가 전문인 나와 칫과의사인 함씨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나 양의가 희귀한 그즈음 천엽치과의전을 나온 함석태씨는 그 방면의 선구자이기도 했다. 그는 삼각동에서 개업을 했었으니까 지금 을지로 입구에서 청계천 고가도로 어귀 근처로 들어가는 부근의 어디쯤 된다. 함씨는 특히 작은 물건을 좋아해서 바늘통이며 담배물부리 같은 것을 잔뜩 사 모았다.
물론 옛날 것이라 모두 사기로 된 것이었다. 요즈음 사람은 베개의 옆에 대는 베갯모조차 동그랗게 사기로 만들어 그 안에 청화로 그림을 그리고 동그란 가장자리에 송송 실 들어갈 구멍을 뚫어놨나고 하면 깜짝 놀랄 것이다.
「플라스틱」이 없고 기타 철재가 희귀한 옛날에는 일체의 일상용구가 모두 도공의 손으로 만들어져 사기가마에서 구워낸 것들뿐이었다.
함씨가 지극히 아끼던 물건 가운데 금강산 연적이 있었다. 모형을 금강산처럼 뜨고 그 안을 텅 비게 해서 물이 드나들게 했던 연적이다. 함씨는 이것을 하도 애지중지해서 꼭 싸가지고 다니다가 일본에 갈 때면 반드시 휴대하고 갔다.
연적자체야 얼마 안되지만 싸고 또 싸고 해서 부피가 불어날 것임은 물론이다.
그때에 일본에 가기 위해 부산에서 연락선을 타려면 조사가 상당히 심했다. 맨처음 그 연적을 가지고 갔을 때에는 상당히 세밀한 검사를 받고 여러 가지로 추궁 당했던 것 같다. 일본의 형사가 골동수집가의 정성스러운 열의를 이해 했을리 만무다.
그러나 여러 번 왕래하는 동안에 나중에는 그게 소문이 나고 말았다. 금강산 연적만은 검사를 할 때도 거들떠보지도 않을 정도로 잘 알려지게 됐다.
언젠가 하루는 함석태씨가 원남동 근처를 지나가느라 웬 달구지에 이삿짐을 싣고 가는 것을 무심코 본 모양이었다.
당시는 현재의 서울대학병원앞길은 인적이 드물고 적적하기 그지없었다.
소달구지를 유심히 바라보던 함씨는 이삿짐 끝에 대롱대롱 매어 달린 옛날 장롱에 눈길을 멈추고 퍼뜩 달구지 뒤를 쫓기로 하였다. 지금의 고려대 우석병원이 그 당시 여의전이었는데 지금은 개천을 덮었지만 그때는 그대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달구지가 개천 옆으로 난 길을 한참 따라가더니 어느 집으로 쑥 들어갔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집을 알아둔 함씨는 속으로 됐다고 하면서 돌아왔다. 그는 목공예에도 상당한 식견이 있었을 뿐더러 그 장롱을 보고 골동을 넣어두는 장으로 쓸 심산이었던 것이다.
때마침 우차에 이삿짐을 실어간 장본인은 새로 들어간 집에 가서 쌀가게를 차렸다. 그래서 함씨는 매일 그 집을 찾아가서 쌀을 꼭 한되씩만 샀다. 주인도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 나중에는 함씨의 거동을 조금 미심쩍게 여기게 되었다.
이렇게 되니 함씨도 사정을 다 얘기하고 그 장롱을 자기에게 달라고 한 모양이다. 그러나 주인은 자기네 조상쩍부터 내려오는 전세품이라 절대로 안된다고 딱 잡아떼는데는 별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의 장롱을 굴뚝 밑에다가 끈으로 엮어 대롱대롱 매달아놓고는 그리 대단치 않게 다루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함씨는 조르고 졸라 결국에는 삼월(현재의 신세계백화점)에서 상등품으로 치는 신식 양복장을 하나 사다주고 그 골동 장롱을 얻어왔다.
함씨가 중학동의 십자각 대문짝을 샀던 일도 잘 알려진 일이다.
함석태씨는 골동을 보는 눈이 탁월했다. 내가 그 수많은 물건을 샀지만 그 중에 속은 것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철사인형 하나와 백자사발, 그리고 진사연적 하나가 기억에 남을 뿐이다. 가짜를 사고 나서 나중에 이를 알게 되면 역시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하옇든 가짜 가운데 신사연적은 이미 작고한 장모씨가 「매출」행상을 할 때 그에게서 산것이었다.
처음에는 다소 미심쩍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감쪽같이 속은 셈이다. 그래서 머리맡에 놓고 자기도 하고 매일 만져보기도 하다가 사람들이 오면 자랑을 해도 모두가 좋다고 감탄을 했다. 그런데 어느날 함석태씨가 우연히 들렀다가 그 연적을 보더니 대뜸 『선생, 그것 넣어두시죠』한다. 그때 함씨의 말을 듣고 자세히 뜯어보니 과연 가짜가 분명했다.
해방되기 직전 일제는 소개령을 내리고 모두들 지방으로 피신하라고 했다. 함석태씨도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골동을 모두 추려 가지고 묘향산으로 간다고 가더니 종래 무소식이었다. 풍문에는 해방 후 황해도에 살았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 골동의 행방은 알 수가 없다.<계속>【박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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