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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 샐 틈 없는 한·미 동맹"… 아베 언급은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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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존 케리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7일(현지시간) 워싱턴DC 국무부 청사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 내용을 발표를 하고 있다. 케리 장관은 이 자리에서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날 두 장관은 존칭이 아니라 서로 이름을 부르기까지 했다. [로이터=뉴스1]

▶존 케리 미 국무장관=“병세가 말하는 걸 듣다 보니 베트남전 때 한국군과 가깝게 일했던 기억이 나네. 세상에. 한·미 동맹이 60년이라니. 나는 새파랗게 젊었던 45년 전(베트남전)에서 한국군과 함께했는데 이거 정말 무섭도록 놀라운 인연 아닌가요.”

 ▶윤병세 외교부 장관=“하하, 고마워요 존.”

 7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 트리티룸 단상 앞. 한 시간여의 회담 뒤 공동 입장 발표를 위해 나란히 선 윤 장관과 케리 장관은 존칭이 아닌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케리 장관이 먼저 베트남전 참전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윤 장관을 ‘병세’라고 불렀다.

 친밀한 모습을 통해 한·미 동맹의 견고함을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분위기만 좋았던 건 아니다. 실질적 성과도 있었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정치상황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신(新)협의체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윤 장관은 공동 발표에서 “양국은 북한 정세를 평가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협의를 보다 심도 있게 강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은 “미국은 박근혜 대통령의 확고하고 원칙 있는 대북 정책을 지지하며, 양국은 결코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어깨 툭툭 치며 “병세” “존” 이름 불러

 이와 관련해 윤 장관은 공동 발표 직후 진행한 특파원 간담회에서 “장성택 처형 등 최근 상황으로 인해 북한의 리더십이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며 “양국은 핵문제를 넘어 북한 정세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하고 양자 및 소다자 등 다양한 형태의 대화를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비핵화에 집중하는 6자회담 외에 북한의 정치상황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추가적 협의체가 출범할 것이란 뜻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 정세 논의를 위한 한·미 협의의 체계화가 필수적이고 시급하다”며 “빈도도 높이고, 레벨도 다양하게 해서 깊이 있게 북한 정세만 분석하자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 관계자는 “이런 양자 논의를 확대해가면 어느 시점에서는 중국 참여도 가능할 것이고, 일본과 러시아 등 5자 체제가 될 수도 있다는 데 양국이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사안에 따라 6자회담 수석 대표나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보다 고위급이 나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해 장관급이 대표가 될 가능성도 시사했다.

 이날 공동 발표에서 케리 장관은 “존스홉킨스대 고등국제관계대학원(SAIS)에서 학위를 마친 윤 장관에게 이번 방문은 ‘홈커밍’으로 볼 수 있다. 왕년의 활동무대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며 발표를 시작했다. “윤 장관은 내가 새해 들어 처음 맞이한 외국의 외교 장관”이라거나 “이 자체가 바로 한·미 관계가 얼마나 끈끈한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말도 했다. 양국 관계의 굳건함을 강조할 때는 ‘한 치의 빛도 새어들 틈이 없는’ ‘바위처럼 단단한’ 등의 표현을 썼다. 윤 장관은 이에 “케리 장관과의 회담은 언제나 생산적이고 즐겁지만, 이번 만남은 전에 없이 시의적절하고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며 “한·미 동맹은 지금이 최상의 상태”라고 화답했다.

북한 상황 변화 대비 새 협의체 합의

 지난해 3월 취임한 윤 장관과 케리 장관의 만남은 이번이 네 번째다. 전화통화는 수시로 한다. 윤 장관은 지난 1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케리 장관과의 외교를 ‘신뢰외교’라고 정의했다. “난 일단 존을 만나면 껴안고 본다. 싫은 사람이랑 그럴 수 있겠느냐”면서다.

 “만나면 어깨를 툭툭 치고, 존칭이나 성 말고 친하게 이름을 부르면서 접근해야지, 담판하는 식으로 나서면 잘 되려던 일도 안 된다. 그러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마지막에 산책하며 2~3분 동안 하는 것이다. 서로 배려가 쌓이면 정말 어려운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윤 장관이 설명한 신뢰외교의 방식이다.

 다만 두 장관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 일본과 관련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기자들과의 문답도 생략했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회담이 이뤄지기 전 미국이 한국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걸 피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중시 정책의 전략적 추가 일본에 기울어져 있음을 반영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미국에 야스쿠니 참배 비판 공감대”

 하지만 윤 장관은 특파원들에게 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충분하게 설명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 학계 인사들 사이에서 아베 총리의 신사 참배를 비판하는 공감대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미국 정부가 실망이라는 표현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신사참배 사태가 없었다면 있었을 일들이 일어나지 않은 게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사례는 소개하지 않았다. 속마음이야 어떻든 겉으로 보여진 모습에서 미국은 일본을 비판하는 강도에선 한국과 차이가 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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