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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로비」 주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세계 회의에서 쓰는 공용어는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러시아」어, 그리고 중국어로 되어 있다.
이런 공용어는 1946년2월1일에 제1회 「유엔」 총회가 열렸을 때 정해진 것이다. 동시 통역이 처음으로 채택된 것도 이때부터의 일이다.
보통의 국제 회의에서는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무슨 말을 쓰는지를 미리 정해 놓는다.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영어와 「프랑스」어다.
국제 무대에서 언어의 소통에 불편을 느낄 턱이 없다. 더우기 외교관은 외국어에 능통해야한다는게 기본 조건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말이 통한다고 사람끼리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뉴요크」에는 1백40개국에서 온 3만여명의 외교관들이 살고 있다.
이들은 겉으로는 매우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다. 거의 매일같이 「파티」가 있다. 술도 면세요 주차도 아무데나 할 수 있다. 외교관의 특권이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여간 허전하고 고독한게 틀림없다. 지난 66년에 「말라위」의 2등 서기관의 아내가 「맨해턴」의 18층 「아파트」에서 두 어린애와 함께 투신 자살한 일이 있었다. 자살의 이유는 고독을 이기다 못한 것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처음으로 「유엔」에 파견된 북한의 대표단은 지금 「뉴요크」의 번화가에 있는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에 묵고 있다.
「월도프·아스토리아·호텔」이라면 「뉴요크」에서도 손꼽히는 고급 「호텔」이다. 그런 「호텔」방을 7개나 빌어 쓰고 있는 것이다.
여간 호화로운게 아니다. 현지 보도에 의하면 북한 대표들은 「호텔」방에 틀어박힌 채 여간해서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있다. 음식은 물론이요 이발까지 방안에서 한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국제 회의에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다. 영어도 모두 유창한 사람들인게 틀림없다.
그런 그들이 애써 외부와 일체 스스로를 차단시키고 있다.
화장실에 갈 때에도 짝으로 간다.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행히 그들은 가족들의 동반이 없다. 아직 대표부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탓이라고만 볼 수도 없다. 몇 해 후에라도 가족들과 함께 살 것이라는 징조조차 아직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중공 대표들도 아직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지는 않다. 가족이 짐스럽다고 여기고 있는 때문일까. 아니면 그네들 자신도 견디기 어려운 고독을 가족들에게까지 나눠주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그러나 그들도 고독을 자청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그래야 마음이 놓이는 모양이다.
언제까지나 사람들은 고립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게 사람의 생리다. 같은 「호텔」의 아래·위층에 있으면서도 대화를 피해야 하는 역리에도 끝은 있으리라고 믿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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