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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품 대가 28억, 퇴직 뒤 달라" … 빌려준 것처럼 공증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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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7년 12월 한 선박용 전기 부품업체 대표는 2007년 12월 당시 현대중공업 부사장이던 A씨(68·현대종합상사 고문)에게 시가 1억3000만원짜리 골프장 회원권을 건넸다. 자신의 회사 제품을 사용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다. 납품이 이뤄지고 10개월 뒤 A부사장이 만나자고 했다. A씨는 “요즘 골프를 칠 시간이 없으니 회원권을 1억3000만원에 사가라”고 요구했다. 납품계약이 끊길 것을 걱정한 대표는 A부사장에게 1억3000만원짜리 양도성예금증서(CD)를 주고 회원권을 되샀다.

 #2009년 1월 현대중공업 선박부품구매담당 부장인 B씨(58)가 협력업체 대표를 부산의 법률사무소로 불러냈다. 법률사무소의 책상 위에는 ‘B씨에게 28억원을 빌렸으며 B씨가 퇴직한 후에 이 돈을 갚는다’는 내용의 문서가 있었다. B씨는 “앞으로 납품을 잘 봐주는 대가로 생각하라. 이 자리에서 공증을 받자”고 했다. B씨는 2년 전부터 납품 대가로 이 업체에서 총 3억3860만원을 받았다. 협력업체 대표는 결국 빚 문서에 도장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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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밝혀낸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들의 납품 관련 비리다. 울산지검 특수부(부장 최창호)는 7일 납품 청탁을 받아주는 대가로 협력사에서 금품을 받은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 12명을 구속 기소하고 달아난 1명을 지명수배했다고 밝혔다. 이들에게 돈을 준 협력업체 대표 3명 역시 구속 기소했다.

기소된 현대중공업 전·현직 임직원은 부사장 1명, 전무·상무 각 1명, 부장 7명, 차장 2명이다. 이들이 납품 대가로 받아 챙긴 금액은 총 46억원에 이른다. 이 중 10억원은 환수했으며 36억원은 추징할 계획이다.

 가장 많은 금품을 받은 인물은 C차장(41)이었다. 2009년 6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4년4개월 동안 협력업체 2곳으로부터 15억2650만원을 받았다. 그는 검찰이 수사를 시작한 지난해 10월 이후에도 계속 금품을 받았다.

 돈을 받는 수법도 다양했다. D차장(45)은 유흥업소 여종업원 계좌로 총 2억9050만원을 송금받았다. 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시도였다. 모두 8개 협력사가 이런 방식으로 D차장에게 돈을 줬다. 사촌의 은행계좌를 동원하거나 친인척을 협력업체 직원으로 등록시킨 뒤 일은 하지 않게 하고 월급을 자신이 가져간 간부도 있다.

 E부장(52)은 27개 납품회사로부터 7억원을 수수했다. 현대중공업 자체 조사에서 비위가 드러나 해고된 뒤 돈을 받았던 협력업체의 간부로 재취업해서는 다시 현대중공업에 금품 로비를 했다. 현재 E씨는 검찰을 피해 달아난 상태다.

 최창호 부장검사는 “조선업 경기가 가라앉은 2007년 하반기부터 납품 경쟁이 치열해진 점을 이용해 현대중공업 임직원들이 협력사에 뇌물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 대표들은 검찰 조사에서 “지나친 요구였지만 을(乙)의 입장에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검찰 측은 “현대중공업 부품 구매 담당자로부터 뇌물을 요구받았지만 ‘범죄까지 저지르며 일할 수 없다’며 계약을 거부한 협력사 대표도 있었다”고 전했다.

 현대중공업은 “비리 예방 담당부서를 신설하고 윤리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협력사로부터 2억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삼성중공업 부장 1명도 구속 기소했다.

울산=차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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