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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건전한「프로」를 위한 각계 인사의 제언-TV와 진실성 천경자(동양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어쩌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가을이 오는구나 할 때, 또 밤하늘에「아이디얼·미싱」선전의「네온」이 뱅뱅 도는걸 볼 때 그 하찮은 것으로 새삼스럽게 살고 싶다는 의욕이 솟음을 느낀다. 건전하다는 뜻은 우선 그토록 아무 것도 아닌 것 이 사람에게 살고싶은 의욕을 돋워준다는 것이 아닐까, 자기 나름대로 풀이해본다.
삭막하고 메마른 거리에서 「택시」에 올라 자동차의 홍수에 젖어 달릴 때「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가 문득 운전사와의 거리감을 없애줄 때가 있다.
또 TV에서 가수가 좋은 노래를 불러주면 담배한대 피워 물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생각일는지 모르지만 내가 좋다는 노래는 다분히 애수도 스민 노래, 작곡가가 팔자로 음악이 좋아서 작곡한 노래, 천성으로 타고난 목소리로 노래하는 가수가 부른 노래이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조작된 명랑 일변도의 얄팍한 그것이 건전한 노래라고 강요되고 있고, 게다가 묘한 가사와 묘한 곡을 가수의 쑥스러운「제스처」로 마치 민달팽이가 끊임없이 점액을 배설하는 듯한 인상을 받게 하는 그런 장면을 보노라면 정말 고독해진다.
「드라마」 는 몇 가지를 제의하고는 어떤 풍조인지 복고풍 일색으로 되다시피 한 느낌이다. 복고풍이 뭐 건전치 못하다는 뜻이 아니고 도리어 절대이상의 시청자에게는 환영을 받고 있는 양보이나 너무 현실 도피적인 것 같아 뭔지 불안하다.
더 좀 이 현실에 부닥친 진실 되고 박력 있는 인간에게 꿈을 안겨주는「드라마」가 나오길 기대해보고 싶다.
지금에 와서까지 고래고래 외치는「동무」소리를 듣는 것도 지겨울 뿐만 아니라 또 기왕 복고풍일 바에는「세트」를 위시해서 시대고증이나 제나름대로 되어있었으면 한다.「드라마」는 바뀌는데 집이 다 똑같고 의상은 물론, 1940년대에 딸이 아버지를「아빠」, 마누라가 남편을「아빠」라고 부르는 따위의 시대착오도 이만저만이 아니며 그런 무신경이 모처럼 괜찮다고 생각했던「드라마」까지에도 먹칠을 하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어떤「드라마」건 간에 그 제작진이 성의를 기울여 부닥쳐 준다면 자연히「리얼리티」가 시청자에게 전달되어『아 저것은 거짓이 아니고 진실이구나! 멋있다』하고 공감할 수 있고 잠시나마 인생을 삭막하지 않고 외롭지 않은 방향으로 건전하게 이끌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문제는 오직 성의에 달린 것이라 본다.
특히 연습미달의「탤런트」는「브라운」관을 사양해주었으면 좋겠다.
또 늘 나오는 MC나「코미디언」가운데 어떤「페이소스」가 깔린 것도 없이 유아독존 식으로 괴상한 목소리를 질러 시청자에게 일종의 불쾌감을 주고 공해를 뿌리고있는데 그렇지 않도록 공부 좀더 해주었으면 한다.
문명이 발달된 탓인지 서울 1950년대, 60년대의 거리의 향수는 그림자조차 없는 요즈음 그래도 가을을 손짓하는 산들바람이 피부에 닿는데 그런 자연스러운 인생의 향기와 진실을 시청할 수 있는「드라마」나 노래를 많이 들을 수 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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