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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하고 품위 있는 신문이 되고자-창간 팔주년에 즈음하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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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로써 본지는 창간 8주년을 맞는다. 8년이란 세월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다. 더구나 지난 8년간은 세상은 물론 인성의 기본까지도 전변을 거듭한 역정이었기에, 본보자체의 처지에서 되새겨 보면 팔풍과 팔난의 여덟 해였다.
그러나 사회제현의 아낌과 성원에 힘입어 오늘의 본지는, 이 나라 최대의 언론으로 내외의 평가를 누리게 되었다. 독자 여러분에게 거듭 감사를 올리는 바이다.
이 계제에 우리는 독자 여러분과 함께 우리의 사회환경과 시대정신을 깊이 성찰해 볼 필요를 절감한다. 이러한 성찰 없이는 신문의 존립은 그 근거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신문은 오늘을 공정 무사하게 인식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일에의 향방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데 그 기본적인 사회기능이 있다.

<정론과 정도>
오늘의 우리의 정신상황에서 외면할 수 없는 비극의 하나는 정사곡직의 분간이 어렵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옳은 것, 바른 것, 의로운 것과, 그와 대척되는 것들과의 본질적인 한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것들은 본시 상대적인 성격의 것이라고 해 버릴 셈인가. 그러나 한때의 사마가 끼지 않는 한, 정의와 정직은 정대공명의 역에 속하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시류의 여하에 불구하고, 인성과 인본에는 불변의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고전과 역사와, 그리고 종교와 철학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가.
인성의 선한 본질에 기초한 제도나 습속은 옮은 것이며, 부차적이고 편의적인 동기 때문에 인성의 대본을 어기는 것들은 사한 것이다. 그리고 소승적인 개아 보다는 대승적으로, 인간일반과 사회의 대국을 사랑하는 길은 정기를 행하는 길이다.
이토록 공명한 정사의 분간이 오늘의 우리에게는 흐리다. 때문에 정의를 내세우고, 정직만을 지주로 삼는 생활정신은 파멸되어 가고 있다. 세력과 황금과 행락만을 일상적으로 추구하고, 이기에 철저한 생활태도가 가장 합리적인 인간처신인양 풍조화되어 가고 있다. 이러한 오늘의 인심과 세정의 동향을 놓고, 어떻게 사악이라는 평을 아니할 수 있겠는가.
본지의 사시는「사회정의에 입각한 정론의 환기」를 그 첫 장으로 한다. 정기와 정론과 정도의 창간정신을 거듭 다짐코자 하는 것이다.

<균형과 조화>
다음에 우리의 일상에서 두드러지게 현상화 하고 있는 흠은. 모든 면의 균형의 파괴이다. 고르지(균)못하고, 갖추어(구)지지 못하고, 화(화)하지 못하다. 불균형과 불구족과 불화갈등이, 개인의 내면생활은 물론 사회생활의 모든 영역에 속속들이 차 있다.
이 사회의 발전단계가 아직 변화의 과도기에 놓여 있는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변화의 시기는 그것대로 그 국면과 과정에 따라, 균형의 체계와 조화의 질서가 있어야 비로소 변화의 가치지향이 있을 수 있다. 균형과 조화가 없는 변화의 계속은, 극과 극 사이를 이동하는 악순환에 그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개인이 인간수련을 할 때에도 전인으로서의 균족이 요청된다. 또는 현대 시민사회에서 사회성원간의 동질성이 형성될 수 있으려면 생활감정과 생활조건에 있어서 균형과 화합의 계기가 그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사회의 운영장치나 그 운동양식도 상호배반보다는 상호결합을, 다층별 불균형보다는 전체적인 조화를, 그 근본으로 함이 사리의 당연이다.
우리의 오늘의 생활생태가 이러한 자명한 이치에 어긋나는 상태에 있다면, 그 유래를 우리는 깊이 깨우쳐야 할 것이다. 그 유래의 근원은 사람마다의 성실성의 부족, 물심양면의 사회적 축적의 빈곤, 외래적인 충격의 폐단 등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요소가 복합적으로, 그리고 동시적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생활질서를 그 기본에서 동요시키고 있다 함이 옳다.
이러한 동요를 능히 제어하고, 그 동인을 발전적으로 흡수하되, 언제나 균형과 안정과 평화를 상실치 않도록, 우리 자신을 조탁할 역사적인 의무가 우리에게는 있다.
이리 저리 치우치는(편) 불안정 속에서, 갈등의 요소만이 우리의 정신과 생활의 균형을 깨쳐 간다면, 화광동진의 화풍은 우리에게서 찾아 볼 날이 없을 것이다.
본지 사시의 둘째 장은「사회복지의 증진과 경제후생의 신장」을 서약하고 있다. 복지와 후생은 가치관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지지만, 사회성원 모두의 가치충족, 이것이 본지의 소망임을 이 계제에 다시금 다짐코자 하는 것이다.

<민족의 목탁>
목탁이라는 어휘는 천하지무도야구의 천장이부자 위목탁이라는 논어의 기술에 유래한다. 논어에서 말하는 무도를 우리는 위에서 돌이켜 본 두 가지 병폐, 한마디로 인간정신의 황폐로 해석하고 싶다. 도가 가치라면 무도는 가치상실 가치전도를 뜻할 수 있는 까닭이다. 언론을 흔히 사회의 목탁이라고 한다. 무도의 현상을 도의 세계 속에 복위 지키는 역할, 이것이 목탁으로서의 언론의 임무이다.
승가는 목탁과 염불을 통하여 불문동행으로서의 서원을 한다. 우리는 인간의 정도, 역사의 대도, 민족의 대경 위에 오늘의 사회를 올려놓고자, 대서원의 목탁을 들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일지의 기록자에 그칠 수는 없다. 또는 세상이야 모로 가든, 빗나가든, 오불관언의 방관자일 수는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르며, 어떤 것이 그르고 치우친 것이라는 시비분별을 민족의 입장에서, 그리고 역사의 시야에서, 정대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본지의 소신이다.
도리는 말하지 않아도 그 밑에는 저절로 길이 난다고 했다. 우리의 소신이 공명하고, 우리의 소작이 정대할진대, 사회공기로서의 품격은 저절로 갖추어지게 될 것으로 믿는다.
본지의 사시 제3장은「건전하고 품위 있는 민족의 목탁」이 될 것을 스스로 기하고 있다. 밝고 넓은 고결한 품위의 신문을, 이 민족과 이 사회에 제공하고자, 온갖 정성을 다할 것을 재삼 다짐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의 더욱 더한 애호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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