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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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행이란 벼르고 모 벼르다 떠나기보다는 예기치 않았던 우연한 기회에 훌쩍 떠나면 더욱 즐거운 법이다.
우리 일행은 부산부두에서 「엔젤」호를 타고 충무로 향했다. 이렇게 해서 낭만을 실은 다도해여행이 시작된 셈이다. 바다는 언제나 젊고 부풀어 있었다. 소녀시절에 느끼던 그 벅찬 감격, 그리고 감미로운 바다의 애수마저도 이제 반백이 다된 이 나이에도 옛날과 다름이 없는 것 같았다.
차라리 더욱 절실한 느낌마저 들었다. 「엔절」호가 빠른 속도로 바닷물을 헤치고 헤엄쳐 나갈 때 느끼는 그 장난스러운 쾌감과 싱그러운 바다 냄새는 향수처럼 온몸에 젖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충무 여관에 여장을 풀고 보니 바라보이는 광경은 아름답다는 말로는 표현이 될 수 없었다. 그 순간 자신의 무지를 부끄럽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시 아름다운 바다와 항구는 외국에서만 찾던 자신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맑고 잔잔한 수면에 크고 작은 섬들이며 있어서 바다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중호수를 연상하게 하는 한려수도는 병풍처럼 우리들의 시야를 펴나가고 있었다. 호텔은 조용하고 깨끗하고 친절했다.
그리고 우리들의 미각을 돋우어 주는 것은 특히 그 집 주방의 생선요리 솜씨였다. 전복·새우·굴, 그 중에서도 도미소금구이는 별미였다. 생선이 물이 좋은 탓도 있었겠지만 그 맛은 일품이었다.
오후에 일행은 충무공의 유적을 두루 살펴보았다. 한 나라의 민족이긴 역사를 가지고 언제 어디서나 자랑할 수 있는 영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더 없이 다행한 일인 것 같다. 안내인으로부터 그 어른의 일화를 전해들으면서 느끼는 감회가 새삼스러웠다. 그런 인물이 「내셔널·히어로」가 되고 후세에 거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현재의 우리들의 자랑일 뿐 아니라 뒤에 오는 후손들을 위해서도 얼마나 떳떳한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충무는 자개강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일행은 귀로에 자개장 만드는 집을 찾아갔다. 이조여인들 손에 깃 든 은은하고 정교하고 아름다운 옛 강들을 연장하면서 들어간 집은 좁은 오막살이였다.
마침 주인은 없고 몇 사람의 직원들이 정성 들여 도안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사양길에 들어선 이 옛 예술을 좀 더 살려서 빛나게 하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 것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고 남의 것에 대한 동경심만이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순<이대교수·도서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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