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할까 … 서울시, 동물복지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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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대공원 물개는 계약 때문에 4년 더 공연 6일 서울 어린이대공원 동물쇼에서 물개가 공연하는 모습. [강정현 기자], [사진 서울시]

“동물 친구들아 나와라.” 동화 ‘피터팬’의 주인공 ‘웬디’로 분한 조련사가 외치자 공연장 천장에선 비둘기가, 무대 위에선 돼지·고양이 등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공연이 시작됐다. 하이라이트는 다양한 물개 묘기였다. 물개들은 조련사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중 점프와 회전 등을 선보였다. 물개의 묘기에 80여 명의 가족단위 관람객들은 박수를 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6일 서울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동물쇼 공연장에선 관람객들의 호응 속에 쇼가 벌어지고 있었다. 6살짜리 딸과 함께 공연을 찾은 조연화(35)씨는 “공연 내내 아이가 정말 좋아했다”며 “평소 가까이에서 동물을 접할 기회가 없던 아이에게 의미 있는 교육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선 매일 4~5회 동물 공연이 펼쳐진다. 원숭이·너구리 등 20종 200여 마리의 동물들이 무대에 선다. 어린이대공원은 서울시 산하 서울시설공단의 소유지다. 하지만 동물 공연은 민간 업체가 운영하고 있다. 2001년 시와 업체가 계약을 맺고 13년째 공연이 계속되고 있다. 시는 업체 측에 토지를 제공하고, 업체는 매년 1억원가량의 토지 사용료를 시에 낸다. 업체가 건설한 공연장 건물도 계약이 끝나면 서울시로 귀속된다.

 반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과천 서울대공원은 지난해 동물쇼를 완전히 없앴다. 발단은 돌고래쇼 주인공이던 ‘제돌이’가 불법 포획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 법원이 몰수 명령을 내리면서다. 시는 이를 근거로 제돌이를 방사했다. 이후 바다사자 ‘방울이’도 고령으로 은퇴하면서 서울대공원의 동물 공연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서울시는 ‘제돌이’ 방류를 위해 시 예산 7억5000만원을 투입했다. 시는 ‘제돌이’ 방사와 동물쇼 폐지를 결정하면서 “동물 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으며 앞으로도 동물 공연은 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가 운영하는 어린이대공원에서 동물쇼가 계속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동물쇼 금지한 서울대공원, 제돌이 풀어주고 서울대공원에서 공연을 하다 지난해 7월 18일 제주 앞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강정현 기자], [사진 서울시]

 서울대공원의 경우 동물쇼를 직접 운영했기 때문에 중단 결정에 걸림돌이 없었다. 반면 민간 업체와 계약을 맺은 어린이대공원은 중단 결정을 내리기가 간단치 않다. 어린이대공원 관계자는 “업체와의 계약기간이 2018년까지로 돼 있어 당장 폐지는 어렵다”며 “무료 입장인 어린이대공원 특성상 동물쇼 같은 수익 사업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며 난감해했다. 관리·감독 기관인 서울시 관계자도 “동물쇼를 폐지하라는 일부 여론이 있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했다.

 ‘동물을 위한 행동’ 전경옥 대표는 “물리적 학대가 없더라도 동물들에게 인위적인 행동을 반복하도록 훈련하는 것은 정신적 학대에 해당한다”며 “어린이대공원 동물쇼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린이대공원 동물쇼 업체 간부 김모씨는 “학대하는 게 아니라 인간과 동물 간의 교감을 통해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동물쇼 자체를 학대로 본다면 우리에 동물을 가두는 것 자체도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동물 보호 관련 단체의 민원을 근거로 공연을 금지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덧붙였다.

 일반 시민들의 의견도 엇갈린다. 2012년 서울시가 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서울대공원의 돌고래쇼 존폐 여부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 522명(52%)이 공연 유지에 찬성했다. 공연 폐지 의견을 밝힌 396명(40%)보다 더 많았다.

 해외에서도 이 같은 논란이 일고 있다. 2년 전 미국에선 한 동물단체가 샌디에이고·올랜도 등에서 범고래쇼를 공연하는 수상테마공원 시월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범고래쇼는 시월드의 최고 인기 공연으로 많은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다.

 1920년대 ‘공연동물법’을 제정한 영국은 동물 종류와 공연시간 등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유럽연합(EU)에선 멸종위기종이나 특정 동물의 공연은 할 수 없다. 한때 야생동물을 이용한 공연이 인기를 끌던 콜롬비아·코스타리카 등은 동물 서커스를 법으로 전면 금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동물자원학과 교수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열악한 시설에서 동물을 전시하는 게 동물쇼보다 더 큰 문제”라며 “동물원 운영 전반에 대한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고석승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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