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서승환 "원점서 다시 짜라" 공기업 개혁안 모두 퇴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크게 미흡하고 위기의식도 매우 부족합니다. 원점에서 재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의 경영 개선안을 보고받은 뒤 한 말이다. 서 장관은 6일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점검회의’에서 “정부 지침에만 피동적으로 따르고 있다”며 정부 세종청사에 모인 14명의 기관장을 질타했다. 이날 오전 박근혜 대통령은 ‘비정상의 정상화’의 첫 과제로 공공기관 개혁을 꼽았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수자원공사·도로공사·철도공사(코레일)·철도시설공단 등 주요 공공기관들은 이른바 ‘정상화 대책’을 국토부에 사전 제출했다. 지난해 11월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공공기관장을 모은 자리에서 “파티는 끝났다”며 부채 세부 현황과 향후 개선 계획 제출을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LH는 20% 경비 절감 계획을 냈고, 수자원공사와 코레일은 “간부들의 임금인상분을 반납하겠다”고 했다. 재무 상태는 괜찮지만 직원 복지가 과도하다고 지목된 인천국제공항공사와 대한주택보증은 중·고생 학비 지원과 휴가 축소, 대학생 학비 무상지원과 과다한 경조금 지급을 하지 않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모든 계획안을 반려했다. 이 정도론 현 정부 임기 내에 획기적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LH가 20% 경비 절감안을 이행하더라도 연간 150억원의 비용 감축 효과밖에 나지 않는다”며 “이런 식의 계획으로는 매년 8조~9조원씩 늘어나는 부채를 감당할 수 없다고 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 장관은 “이번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공기관 정상화는 예전과는 다르다는 정확한 상황 인식과 비장한 긴장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집권 초 공공기관 개혁을 추진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흐지부지됐던 이전 정부의 선례를 따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LH는 2010년 121조원이던 빚이 2012년엔 138조원으로 늘었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는 141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부채비율도 467%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부채비율이 200%를 넘는 회사는 재무구조가 불량한 곳으로 분류된다. 코레일(242%)과 철도시설공단(721%)도 같은 기준으로 보면 ‘재무구조 불량 회사’다. 도로공사(25조300억원)와 수자원공사(13조8000억원)의 부채도 2010년에 비해 각각 2조·5조원씩 늘었다. 박 대통령은 수자원공사에 대해 “4대 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재정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수공에 자체 재원으로 추진하도록 해 부채 규모가 급증하고 경영이 급속히 악화됐다”면서도 “자체적인 방만·편법 경영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장관은 이날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조직 운영에 쓰는 경상비를 10% 이상 줄이고, 2017년까지 조직 동결을 지시한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조직 동결은 인건비 동결이 될 수도 있고, 직원 수 동결이 될 수도 있다”며 “매년 수백 명씩 직원 수를 늘려온 곳과 임금을 지속적으로 인상한 곳이 각자 스스로의 현황을 잘 판단해 이에 맞는 동결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기관장들은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서 장관이 3월에 직접 추진 성과를 점검하고 6월 말 평가를 통해 “부진한 기관장에 대해선 임기와 관계없이 조기 해임을 건의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채가 가장 많은 LH에 대해선 “강력한 구조조정과 근본적인 재무개선 대책 없이는 망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과 각오로 혁신적인 부채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재영 LH 사장은 “노조의 경영권 개입과 방만 경영을 일으킨다고 비판받는 단체협약에 대한 개정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고할 예정”이라며 “사업 감축에 따른 부채와 수익 감소분을 정밀하게 비교 계산한 사업 구조조정 방안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세종=최선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