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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동완|U대회대표단임원 동완 교수 방소 수기|「크렘린」1948년과 1973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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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결사적 싸움은 끝났다. 단장 이하 임원·선수들은「레닌」경기장에 소련·미국 국기와 나란히 게양된 승리의 태극기를 쳐다보며 삶의 보람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하루를 효과적으로 지낼 것을 상의했다. 오전 중에 가능한 모든 관광을 즐기고, 중국요리 점으로 으뜸가는「레스토랑」「페킹」(배경)에서 자축과 소련 측 안내인들에 대한 위로 선물 전달을 겸한 모임을 가진 다음「러시아·호텔」의 1층 외화 상점「베료스카」에서 잠시 「쇼핑」을 한다는 단장의 의견에 따르기로 결정한다.
25일 아침 7시 반 총감독 인솔하에 지하철로「크렘린」을 향한다. 「에스컬레이터」를 이어 타고 깊숙이 내려가 잠시「우니베르시체트」(대학)라는 명칭의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수많은 대리석 조각으로 장식 돼 호화로운 공간이다. 아직 출근 시간이 이른 탓인지 손님은 많지 않다. 승객들은 잠시 우리들의「유니폼」차림에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읽던 인쇄물로 돌아간다. 대부분이 뭔가 읽고 있다. 시내의 지하철 노선을 가리키는 도면 걸려 있다.
도심에서 서로 교우 하면서 7개의 노선이 한쪽 교외와 다른 쪽 교외를 거의 직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레닌…화장한 배우 얼굴>
지상의 순환선이 있어 각 노선을 연결해 주고 있다. 출발하여 여섯 정류장만에 붉은 광장 근처의 정류장에 내려, 매우 긴 지하도를 지나서「트로이츠카야」탑 근처에서 지상에 올라선다.
노면보다 낮은 곳에 아담한 공원이 있고 그 한구석에 휴대품 보관소가 있다.「크렘린」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사진기를 제외한 것들을 맡기는 것이다.
「레닌」묘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위해 9∼10시 사이를 비워 놓고 있다. 대기 장소에 가서 다시「카메라」등 모든 것을 맡기고 맨손이 된다. 묘안에서는 촬영이 금지 돼 있다는 것이다. 한참 기다리고 전진하고 하는 사이에 젊고 아름다운 두 위병이 선 묘 정면 입구로 들어가게 된다. 왼쪽으로 틔어 있는 공문을 전진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는 층계다. 컴컴해진다. 곧 유리관 속에 누워 있는「레닌」의 유해가 머리 쪽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네 귀에 역시 위병들이 서 있고 그 외에 장교가 2명 지켜보고 있다. 발치 쪽으로 돌아서 나가게 되어 있다.
그의 독특한 이마와 수염이 그림 그대로며 마치 무대 배우가 화장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스탈린 초상 볼수 없고>
밖으로 나와 성채 아래에 나 있는 통로를 걷기 시작한다. 묘 뒤쪽 첫머리에「스탈린」의 무덤이 완 경사의 널따란 묘 석으로 표시되어 있고, 같은 모양의 무덤들이 오른쪽으로 이어 있다. 왼쪽으로 꺾으면 성벽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은 구리쇠만이 묻혀 있다. 알만 할 당 정치가·군인·학자들의 이름이 보인다. 1948년 여름 필자가「하바로프스크」근처인「호르」수용소에서「모스크바」동양 대학(지금의「모스크바」대학교「아시아·아프리카」대학의 전신)학생들의 우리말과 일본어·중국어 등의 실습 상대를 하고 있던 무렵에는 거의 모두가 생존해 있던 사람들이다.
1주일의 군사 행동으로 얻은 승리의 제물인 포로를 50개월이나 억류해 두고 노동을 강d했던 몰염치 한의 무덤을 눈앞에 보고 필자의 감회는 깊다.
오직 혼자만이 소련의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었던 전능의 권력자「스탈린」은 온 세계에 수치스러운 죄악을 폭로 당하고 흙으로 화했으며, 그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필자는 조국을 찾고 지금 나라를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그의 무덤을 보면서 지나가는 것이다. 소련 천지 도처에서 위협의 미소를 머금고 내려다보던 그의 초상은 이미 어디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대포의 왕·종의 왕 구경>
지금의 소련에서는 그를 잊으려 하고, 아니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레닌」과 나란히 그토록 찬양 받던 그의 그림자는「레닌」의 초상만을 남기고 자취 없이 사라진 것이다.
전일에 회의 궁전에 왔을 때 지난「트로이츠카야」탑을 다시지나「크렘린」안으로 들어간다. 단장의 지시로「페킹」반점을 다녀온 필자는 황급히 사진기를 찾아 가지고 우리 선수단을 뒤쫓는다. 회의 궁전은「크렘린」성벽 안의 유일한 현대식 건물이다. 왼편에 붉은 기를 거대한 초록색 둥근 지붕 위에 올린 건물과 거기에 연결되는「크림」색의 기다란 건물을 바라보면서 대포의 왕·종의 왕에게로 다가간다. 이 건물들이 바로「소비에트」권력의 중심지인 것이다.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우리 일행이 많이 있는「아르한겔리스키」사원으로 들어간다.

<48개 이름 새긴 청동 판>
1506년에「이탈리아」「밀라노」출신 건축가가 지은 것이라고 한다. 48개의 이름을 새긴 청동 판에 싸인 관들이 놓여 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아버지「이반」4세에게 맞아 죽은「드미트리」의 관이 있는가 하면「타타르」의 앞잡이질까지도 불사하며 자신의 영토 확대와「모스크바」공국의 부강을 꾀해서 대「러시아」제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1340년에 죽은 「이반·칼리타」(돈주머니)의 관도 있다. 「블라고베시첸스키」(수태고지)사원과「우스펜스키」사원을 지나치면서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와「굼」(국영 백화점)안을 지나서 주차장으로 간다.

<바라던「사모와르」입수>
바깥 보도의 혼잡을 피하려던 일행은 지나는 길에나마「굼」의 내부를 볼 수는 있었던 것으로 마음을 달랬다.
AP통신의 사진기자「보리스」부자가「크렘린」성과「바실리·블라젠느이」사원 등을 배경으로 일행의 기념 촬영을 한 다음「버스」편으로「러시아·호텔」1층에 있는 외화 상점「베료스카」로 선물을 사러 간다. 다양하지도 못하고 솜씨도 조잡하나 이 나라의 특산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호박 제품·모피 제품 등도 있다. 임원·선수들의 쇼핑을 돕고, 필자도 딸들을 위해 약간의 선물을 사고, 오랫동안 바랐던「사모와르」도 입수했다. 찻물을 끓이는 간단한 기구지만「러시아」인「러시아」문학과는 뗄 수 없는 것이다.

<할인한 물건도 비싼 셈>
그 옛날 은으로 정교한 장식을 넣어서 만든 것과는 달리「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들어 전력을 쓰게 한 조잡한 물건이지만 귀국하면 이것으로「러시아」문학 애호가들과 차를 끓여 나누리라. 가격은 전부「루블리」로 표시되어 있으나 그것을 미화 혹은 일본「엥」등으로 환산하여 외화만을 받는 것이다.「러시아」인들은 이 곳에서는 많이 할인해 파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 비긴다면 조금도 싸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비싸다.
「페킹」반점의 오찬회는 유쾌했다. 경기 예정표에 따라 단장은 19일에 오찬회를 그 곳에서 소련 측 안내자들과 함께 갖기로 하고 몸소 가서 예약까지 한바 있었으나 경기 일정의 변경 때문에 25일로 연기된 것이다.

<안내자와 오찬회 가져>
한-소 양국의「스포츠」교류가 더욱 발전되기를 바라며 그 동안의 친절에 감사한다는 요지의 간결한 단장 인사에 대해 안내 책임자도 전적으로 동감이라는 뜻과 우리 단의 규율과 기량이 훌륭하여 주선한 자신들도 기쁘고 자랑스러웠다는 말로 대답했다. 선수촌 사진부에 맡긴 강 총감독의「칼라」사진을 찾을 시간이 되었기 때문에 필자는 총감독을 모시고 먼저 「택시」로 돌아온다. 오늘로 사진부의 일도 끝나니까 시간을 꼭 지켜 달라고 중년 부인인 취급자가 재삼 부탁했고「필름」보관증에도 시간을 명기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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