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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3중 과세'의 상속세는 재고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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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남편이나 아내가 숨질 경우 상속 재산 중 절반을 배우자가 우선 받도록 하는 쪽으로 민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고령화 대응 차원에서 강구되고 있는 대책이지만, 좀 더 거시적인 접근이 필요한 상황이다. 특히 상속제도 개편은 상속세제와 밀접히 연동돼 있는 만큼 상속세제 전반에 대한 재검토 작업과 함께 이뤄져야 할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율은 재산 규모에 따라 10~50%다. 상속·증여세 최고세율은 1996년 이전 40%에서 97~99년 45%, 2000년 50%로 높아졌다. 이 같은 최고세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며, OECD 국가 평균(26%)의 두 배에 육박한다. 상속세는 소득에 세금을 매긴 다음에 다시 사망을 계기로 세금을 매기는 것이란 점에서 이중(二重)과세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나아가 과소비와 조세 회피를 조장하는 등 사회의 건전성을 오히려 떨어뜨린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70년대 캐나다·호주에 이어 2000년대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스웨덴, 홍콩, 싱가포르, 뉴질랜드 등이 상속세를 폐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 상속세제의 또 다른 맹점은 피상속인(사망자)으로부터 재산을 상속받았던 배우자가 사망할 때 또다시 상속세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세대 사이에 재산이 이전될 때 과세한다는 ‘1세대 1회 과세’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이중을 넘어 삼중(三重)과세다. 부부가 평생 함께 일군 재산에 대해 사망 배우자의 명의였다는 이유로 상속세를 매기는 건 온당치 않다. 상속세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81년 세제 개혁을 계기로 부부간 상속·증여에 대해선 전액 과세를 면제하고 있다. 영국 역시 배우자 간 재산 이전에 면세를 하고 있다. 미국은 525만 달러(2013년 기준)를 세 부담 없이 상속할 수 있는데, 이를 다 공제받지 못하고 숨질 경우 생존 배우자가 남은 한도를 승계받을 수 있다. 일본과 독일은 배우자에게 주택을 증여할 때 주거 안정 차원에서 별도의 공제 제도를 두고 있다.

 이러한 각국의 상속세제가 주는 메시지는 재산 상속을 무조건 ‘불로(不勞)소득’으로 보고 징벌적 과세를 해온 우리 상속세제에 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행 상속세제가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다. 기업인들의 경우 막대한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면 경영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난해 8월 정책토론회에서 중견기업인들이 “가업을 승계하려고 공장을 파는 일도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과도한 상속세가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고 일감 몰아주기와 같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지난 연말 국회에서 가업(家業) 상속 공제 대상이 늘어나긴 했으나 더욱 과감하게 족쇄를 풀어야 할 것이다.

 이번에 상속제도가 바뀌게 되면 그에 따른 세 부담 변화 등을 감안해 전반적인 상속세제 개편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생존 배우자의 노후를 지원한다는 목적이 세제에도 반영돼야 한다. 상속세 납세자가 소수(2%)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무시할 일이 아니다. 고령화에 대처하고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시스템 전반을 원점부터 다시 들여다보는 노력이 시급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