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자원의 정치무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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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자원민족주의의 가장 과격한 기수이자,「아랍」제국가운데 미국과「이스라엘」에 대하여 가장 격렬한 적대감을 보여오던「리비아」가 마침내 세계전체를 또다시 전쟁으로 이끌지도 모르는 과격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번에「리비아」정부가 취한 조치를 보면, 그들이 중점적으로 겨냥한 것이 원유가 인상으로 골탕먹을 석유수입 국들 일반이 아니라, 주로 미국의 대「이스라엘」정책인 것만은 틀림없다.
국유화조치로 자산을 강제판매 케 된 5개 서방석유회사 중 미국계가 4개나 된다는 점, 그리고 금태환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달러」의 수납을 거부한 점등이 이를 단적으로 반증한다.
특히「달러」수납의 거부는 현재 각국의 통화가운데 금태환이 보장된 통화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그 목적이 더욱 명백해진다.
사실「리비아」가 미국의 대「이스라엘」정책을 공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어느 정도의 명분과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예컨대 미국은 현재 64억「달러」의 자본을 중동산유국에 투하하고 있으며 산 유업에 종사하는 미국인의 숫자만도 1만7천6백명에 이른다. 국제석유독점자본 특유의 비밀장막 때문에 이들이 거둬들이는 수익이 얼마인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1년간 수익이 줄잡아 30억「달러」는 상회할 것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미국은「아랍」제국에서 이처럼 방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팔레스타인」문제에서는 언제나「아랍」국가가 공동의 적으로 몰아세우는「이스라엘」편만을 들어왔다는 비난에는 근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48년의「팔레스타인」전쟁, 56년의「수에즈」전쟁, 67년의「6일 전쟁」등 지금까지 있었던 3차례의 전면전이 늘「아랍」측의 패배로 끝났던 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 같은 미국의 작용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아랍」민족주의의 정신적 지도자로서「나세르」가 남긴 공간을 메우려하는「가다피」의장으로서는 이번 조치가 일종의『강요된 선택』이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현재로서는 미국이「리비아」의 위협에 굴복하여 대「이스라엘」정책을 수정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불매운동 내지 은연중 무력개입의 의사표시(「유·에스·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등으로 강경히 반발했다.
또「리비아」를 제외한 다론 중동산유국들이「가다피이즘」에 추종할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나「쿠웨이트」등이 미국의 대「이스라엘」정책을 지적하면서 자칫 석유이권을 손상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리비아」의 입장을 두둔하기는 했지만, 이것은 실은 「가다피」가 얼마나 앞서가고 있는가를 반증한 것으로 보아야한다.
그러나 반면, 원유 가의 폭등을 겁낸 석유 소비 국들이 힘을 합칠 경우, 전세계생산량의 4.1%를 생산하는「리비아」가 다른 산유국의 동조 없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이번의 「리비아」도전은 국제정치상 매우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 할 것이다.
그것은 이번 일을 계기로 미국이 지금까지의 대「이스라엘」정책을 다소나마 수정할 것이라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자원민족주의의 흐름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쳐 세계사의 방향을 바꿔놓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미국이나 기타 선진국이 국제석유독점자본의 몰지각한 논리에 함께 휩쓸리지 말고 냉철한 이성으로「리비아」의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해주도록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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