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모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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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 여름을 그 심한 무더위 속에서 일만 하시느라 더위를 잡수신 어머니를 모시고 약수터로 가기로 한 아침이었다.
농사바라지로 피서 한번 가지 못했던 나는 모처럼 하는 나들이라 도시락을 싸고 외출 준비를 하는 마음이, 어린 날 학교에서 소풍 가던 날처럼이나 즐겁고 설레는 마음이었다.
회갑을 지내신 어머니지만, 새로 해드린 연한 노란색 한복은 검게 타신 얼굴이며 손이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그래서나는 『엄마, 이렇게 검게 그을린 얼굴을 하시고 어떻게 많은 사람이 모인 곳으로 놀러가죠?』하고 웃었더니, 어머니께서는
『얘야, 그러면 너도 전에 어느 누구처럼 너의 엄마가 아니고 행랑 할멈이라고 하면 되지 않니?』하시며 마주 웃으신다. 오래 전에 어느 시골 할머니가 서울에 사는 아들네 집에 가는데 쌀로 떡을 하고 팥이며 콩이며 좋다는 곡식들은 다 올망졸망 싸서 이고 찾아가니, 마침 그 아들의 생일이라 생일「파티」에 초대되어온 아들의 친구들이 그 할머니가 누구냐고 물으니 그 아들의 대답이 『고향집 행랑 할멈이라네』하더란다.
하도 초라한 행색을 하고 오신 시골 어머니가 친구들 보기에 부끄러워서 한 말이었겠지만,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해서 공부시켜 주신 그 자랑스러운 어머니에게 어쩌면 그렇게 가혹할 수가 있었을까. 물론 이것은 지어낸 말인지는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정신의 기둥이 무너져 가고 있음은 모르고 체면과 허세만 앞세우는 세태가 되어 가는 것만은 사실이다.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순수한 마음은 흐려지고 메말라 나도 어쩌면 그 행렬의 대열에 끼여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침햇살에 눈부신 우리 어머니의 구리 빛 이마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이글 보내신 분은 주소·성명을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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