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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국미술사」를 보면 허전한 구석이 있다. 어느 저자의 경우나 그 허전한 곳을 메우지 못하고 있었다. 삼국시대의 회화는 그 정도로 백지상태인 것이다. 다만 고구려의 벽화에 관한 기록뿐이다. 비로소 회화가 하나의 「절」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시대를 껑충 뛰어 고려에 접어들어서 이다.
이번에 경주의 155호 고분에서 발굴된 「천마도」는 백지의 회화사를 빛내 주는 중요한 자료인 것 같다. 사학자들은 이 그림에 대한 예술적인 감동에 앞서 하나의 대로로서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시정인들의 눈엔 미술사적 가치로서보다는 그 생동하는 준마의 모습이 더욱 감동적이다. 흰 구름 위를 둥둥 나(비)는 붓질하는 광경은 여간 호쾌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다. 마치 번거롭고 혼잡한 이 일상을 벗어버리고 하늘이라도 훨훨 나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우리의 일상이 곤혹스럽고 무미건조할수록 이 한 폭의 그림은 큰 해방감을 주는 것 같다. 구름은 헤치고 갈기를 흩날리며 달려가는 백마. 우뚝 세운 꼬리하며 입에서 불길을 뿜는, 그 기상은 후련하기까지 하다. 사람에겐 때때로 이런 준엄한 야성과 불굴의 모습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본능적 위상이 있는 것이다.
이 천마도는 말안장의 일부인 배 가리개(장니)에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에는 하늘을 나는 백마와 함께 네 귀퉁이에 보상화식 인동당초문의 띠(대)가 둘러있고, 그 띠 안엔 또 화문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이런 사연들은 사학자들에게 의해 깊은 흥미를 자아내게 하는 것 같다. 우선 우리 민족의 역사적 이동을 추구하는 하나의 단서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른바 우리 나라 북방에 있던 기마 민족이 어떻게 움직였는가는 사학자들의 집요한 관심사이기도 했다.
신라시대의 그림으로는 이제까지 세 종류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경주에서 발견된(71년1월) 화랑유적지의 「기마행렬도」, 또 다른 하나는 신라선각 대벽화(71년5월), 그리고 영주 순흥의 연화문(71년8월). 그러나 이들은 모두 암벽에 그려져 있는 것이며 그 기법에 있어서 치중하여 큰 의미를 찾지 못했었다. 그만큼 「천마도」는 진귀한 존재로 등장했다.
고분의 발굴이 활발해지면서 시정의 관심이 금붙이에만 머물러 있던 것은 좀 「아이러니컬」하다.
「즉물주의」의 풍조가 여기에서까지 엿보여 마치 보물섬 찾기와 같은 인상마저 없지 않았다고 이번에 한 폭의 그림이 발굴된 감동은 그런 뜻에서도 새롭고 뜻이 있다. 왕관의 세속적인 위풍보다는 한 폭의 그림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인간의 생활, 그 생동하는 정신의 빛 등에서 우리는 더욱 따뜻한 느낌을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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