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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0)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149)|<제자 박갑동>박갑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남침 직후>
나는 6월26일「라디오」방송에 의하여「유엔」이 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군의 공격을 침략이라고 인정하며 38선 이북으로 철퇴를 요구하는 결의를 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27일에는「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한국원조 결의를 채택하였다.「트루먼」대통령은 해·공군에 한국원조 출동을 명령하였으며 제7함대를 대만 해협에 파견하게 되었다.
김일성의 모험주의 불장난이 드디어 큰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하도 답답하여 그 당시「라디오」의「다이얼」을 평양방송국에 맞추어보니 김일성의 연설을 방송하고 있었다. 그것을 들어보니 1941년6월22일 독·소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스탈린」이 소련국민에게 총 궐기를 호소하는 그 연설의 형식을 그대로 본 뜬 것이었다.『남조선인민들이여! 총궐기하라! 남반부「빨치산」들이여! 총 궐기하라!』는 등 판에 박은 선동형식으로.
그러나 실제로「히틀러」독일군대의 불의의 침공을 당한「스탈린」의 호소 연설문에는 진실성과 절박감이 있었으나 김일성의 호소연설에는 허위와 기만성이 뻔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도리어 혐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김일성의 호소연설을 듣고「총 궐기할 남조선 인민은 한사람도 없었으며「총궐기할 빨치산」도 한사람 없었다.
나는 내 동료들에 대하여 차마 내 정신으로『총궐기하라!』고 명령할 수는 없었다. 나는 망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진격하여 오는 북한군이 서울에 점점 가까이 오는지 27일이 되니 포성이 아주 가까이 들리며 박격 포탄이 고려대학 뒷산 근처에 떨어졌다는 소문까지 들렸다.
그래서 나는「아지트」를 동대문 밖에서 동대문 아닌 을지로4가로 옮겼다. 비가 오다가 마다가 하는 무더운 날씨였다. 나는 우산으로 나의 얼굴을 가리면서 을지로4가에 있는 모 여배우의 집으로 갔다. 여배우부부가 우리 조직원이었다.
한편 나는 사태가 이렇게 위급하여져 가니 김삼룡 이주하 정태식의 신변에 대하여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변이 일어나자 장병민은 매일같이 담당취조관이던 장모를 찾아가서 정태식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장모수사관은 장병민의 아버지인 장택상의 부하였다.
27일 저녁때 장모가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떠나기 직전 정태식을 형무소에서 빼냈다. 채항석의 집 현관문이 열리자 정태식이 뛰어들어왔다. 그 뒤에 장모가 서있었다.
장은 후닥닥 나가버렸다.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장병민은 현관문을 닫아 잠그고 정태식을 골방 안으로 감췄다. 지금 생각해봐도 어수룩한 시대였다.
정태식은 이렇게 하여 장병민의 덕택으로 풀려 나왔으나 김삼룡 이주하는 죄상에 따라 처형되고 말았다.
6월28일 아침에 밖에 나가보니 이미 소련제「탱크」가 기관총 쏘는 소리를 내며 원남동 쪽에서 종로4가를 지나 을지로4가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을지로4가에서 돌아서 국도극장 앞으로 하여 을지로1가 쪽으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나의 비서와 여배우 부부에게 정판사「빌딩」으로 집합하라고 지시하고 나는 서대문으로 향하였다. 혹시 아는 동료들이 출옥되는가 싶어 서대문 형무소로 가는 길이었다. 광화문 거리를 지날 때보니 중앙청 앞에 북한군의 차량들이 보이며 입구를 지키는 군대도 보였다.
나는 박헌영이나 누구나 와있지 않은가 하여 도중에서 방향을 돌려 중앙청으로 들어가 봤다. 보초에게 용건을 이야기하고 안으로 들어가 봤다. 정면입구 왼편쪽 방으로 들어가 보니 거기는 벌써 나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7, 8명 기다리고 있었다.
북한군의 점령군 사령관에게 제일먼저 아첨하러온 남로당원이나 부화뇌동하는 분자들이 아니고 나이 많은 영감들이었다. 암만 얼굴을 다 돌아봐도 내가 아는 얼굴은 한 사람도 없었다. 알지도 못하는 영감들 옆에 앉아 군사령관이 나오도록 기다릴 수가 없어 옆방으로 들어가 봤다. 중성 세개(상좌)를 붙인 군관이 칫솔로 양치질하고 있었다.
『책임자 동무가 없는가』하고 물으니 자기가 책임자라는 것이었다. 내 눈에 그가 서울시에 제일 먼저 들어온 연대장 같이 보였다. 내가 자기 소개를 하며 박헌영 동지가 오지 않았는가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흔들면서 정치간부는 아직 한사람도 서울에 들어온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가겠다고 돌아서니 그 연대장이 하는 말이『저 방에 웬 사람들이 와서 나를 면회하러 왔다하는데 뭐 하는 사람들인지 좀 물어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방으로 다시 들어가 봤다. 모두 다 60이 넘은 노인들이며 흰모시 두루마기를 입고 점잖게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영감들 옆에 가서 한 사람 한 사람 성명과 용건을 물어봤다.『나는 가회동에 사는 이모요』『나는 삼청동에 사는 김모요』하는데 모두다 서울서도 이름난 양반집 영감들이었다.
용건은 모두다『새로운 군사령관을 뵙고 인사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인심은 조석 변이라더니 이 영감들이 어제까지는 이승만 대통령 또는 모모장관 집을 찾아다니던 영감들인데 오늘은 제일 선참으로 인민군의 사령관에 첫인사를 하러 오다니…하고 생각하니 서울양반이라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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