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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의 원흉은 「스탈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워성턴21일합동】「캐나다」의 「터론트· 스타」 지의 「마크·게인」 기자는 20일 한국전쟁에대한 「칼럼」이 기사에서 한국전쟁의 원흉이「스탈린」 이었다는 정실이 최근 동구공산권의 공산주의력사가들에 의해서 공공연하게 폭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에 북한당국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했고 금년초 서울에도 온바 있는「게인」기자는 또한 한국전쟁이 공산주의고들이 일으켰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서방측배사가들은 정치적동기로 그러한 말사적사실까지도 왜곡하려하고있다고 개탄했디.
동구의 수정주의사가들온 한국전이 어떻게해서 발발되었느냐는 문제를 다음과같이 보고있다고 「게인」 기자는 맡했다.
『1949년말 「스탈린」은 한국에서의 군사모험이 한번 해볼만한 일이라고 느끼기시작했다. 「스탈린」이러한 생각을 하게된 중요한 동기의 하나는 이제막 권좌에 오른 중공의모택동이 아직 소련과 완전히 항동을 갈이 하겠다는 언약이 없기때문에 그가분명한 태도를 취할수있는사태를 유발시키는것이 바람직할것이라고 믿고있었다.
「스탈린」은 한국에서 군쟁행동을 개시하면 모택동이 어쩔수 없이 소련과 운명을 갈이하게 될것으로 믿었다.
여기서 또 하나 생각해야 할점은 당시「딘·애치슨」 미국무장관이 미국은한국을 의해 피를 흘리고싶지 않다는 미온적인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다.
이밖에 「스탈린」은 또한 한국에서 군사행동을 하여 승리를 커두는데는 별로 큰비용이 들지않고 또 이 군사 행동에 성공만 한다면 일본을 극히 어려운 입장에 몰아 넣을수 있을것으로 믿었다. 한편모택동은「스탈린」의 결심을 알고있었으며 이때 소련을 따르면 중공이 보다 강력한 세력과 영향력을 가진 국가로 등장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소련과 행동을 같이할 용의를 가지고있었다.
1949년에서 50년 사이모가 「모스크바」 를 방문한것을 계기로 급기야는 양국간에 한국에서의 군사행동개시에 관한 제1차적인 합의가 이루어졌다.
이협정은 장개석의 국부공군기들의 상포를 비롯한 중공의 어려도시에 대한 공습을 막기위해 소련공군븐견대를 중국중부에 주둔시길것을 규정했다.
그후 몇번의공중전이 벌어진끝에 국부공군기의 공습은 중단되었다. 또한 같은 협정에따라 1950년 중반에 소련은 그의 공군을 단주와 중국북부에 배치시킬수가 있었다. 이소련공군부대의 머무는 북경과중국동북부에있는 중공산업시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1950년가을까지 소련정예공군조종사들은 양측이모두 피해를 보면서 미군기들과 중공상공에서 공중전을 벌였다. 그사이에 소련은 중공과 또 하나의 비밀협상을 맺고 소련군5개사단을 중국동북부에 보낼수있게 되었다. 이와동시에소련군과 고문들이 중국동북부와 북한으로 들어갔으며 중공군보병·「탱크」부대·포병·공비장교를 훈련시키기위해 십타학교를 설치했다.
이때부터 앞으로있을 한국전쟁을 준비하기위해 막대한양의 소련군장비가 중국동북부지역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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