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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한국이 TPP에 가입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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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석한
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

미국·일본과 태평양 연안 10개국이 25조 달러 규모의 통합시장을 형성하고 새로운 글로벌 교역 시스템을 확립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의 체결이 눈앞에 다가왔다. 방관자였던 한국은 이제 가입 협상에 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한국이 가입하려면 미국을 포함해 현재의 TPP 가입국들과 양자 합의를 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한국이 TPP 가입으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기회와 전략적 이득을 고려하면 그럴 가치가 충분히 있다.

한국은 TPP에 참가함으로써 전반적으로 이득을 볼 것이 분명해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TPP에 가입하면 국내총생산(GDP)이 2025년까지 450억 달러 이상 증가하며, 가입하지 않으면 30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 정부도 한국의 가입을 바란다. 1조 달러 규모의 한국 경제가 더해진다면 TPP의 시너지 효과와 중요성은 더욱 증대할 것이 다. 한국의 가입은 중국에 대응하는 균형추로서 경제블록화에 유용하며, 이를 통해 워싱턴이 TPP에 적용하는 무역 정책을 준수하도록 중국에 요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은 이를 미국 기업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때 규제 관련 불만을 토로하는 일부 분야에서 한국의 양보를 끌어내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이는 한국의 지속적인 한·미 FTA 이행과 관련이 있다. 특히 정치적 영향력이 큰 미국 자동차산업은 한국 관세청이 요구하는 원산지 증명이라는 번거로운 절차에 대해 불평한다. 미국의 오렌지주스 수출업자들은 한국 통관 절차에 대해 비슷한 우려를 표명한다. 그뿐 아니라 미국의 금융서비스 기업들은 한국이 재무 데이터의 국가 간 이동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은 미국이 한국의 TPP 가입을 지원하는 대가로 한·미 FTA의 완전한 시행을 요구하면서 모든 분야에서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국은 미국이 한·미 FTA와 직접 관련 없는 분야에서도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쇠고기산업은 30개월 이상 된 쇠고기에 대한 한국의 수입 제한이 과학과 국제규범에 맞지 않다고 여긴다. 미국이 압력을 가할 또 다른 가능성으로 미국 제조업계가 계속 주장하는 원화가치 조작 문제와 유기농 식품의 기준 통일이 있다.

 안타깝게도 TPP 최종 합의 과정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상당히 제한됐다. 미 무역 당국자들은 한국과 같은 회원국 추가를 논의하기에 앞서 기존 참가국(호주·브루나이·캐나다·일본·말레이시아·멕시코·뉴질랜드·페루·싱가포르·베트남)과의 협상을 마무리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여러 차례 발표했다. 이로써 한국은 2014년 초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최종 합의를 단순히 인정하느냐 마느냐만 결정해야 할 처지다.

 한국은 비록 TPP 후발주자지만 여전히 좋은 패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미국은 한국에 상당한 양보를 요구할 것이 확실하지만 미국은 궁극적으로 한국 없는 TPP보다 한국이 가입한 TPP를 강하게 선호한다. 한국은 어떤 분야에서는 합리적으로 양보하고, 미국의 요구수준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로 높아 국내 정치에서 상당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이는 다른 분야에선 확고한 자세를 보이는 등 균형 잡힌 유연성이 필요하다. 세관 절차의 간소화가 전자가 될 것이고, 강한 소비자 정서와 공중보건 관련 우려가 상존하는 쇠고기 분야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TPP 가입의 동기를 생각해야 한다. 이는 지역과 국제사회에서의 한국 위상을 높이고 한국 경제에 대한 장기전망치를 높일 것이다. 이러한 거대한 이득을 고려하면 작은 대가를 지급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김석한 미국 워싱턴 애킨검프 법률회사 시니어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