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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산업 샌드위치' 에서 탈출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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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안현호
무역협회 부회장

등산을 하다 보면 정상을 앞두고 소위 ‘깔딱 고개’를 올라야 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힘겨움을 참고 마지막 고비를 넘어야만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선진국이라는 정상을 눈앞에 두고 깔딱 고개를 숨가쁘게 넘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지난 반세기 한국 경제는 놀라운 속도로 산 정상 근처까지 올라왔다. 우리는 중국·일본과 상호보완적인 분업으로 세계적인 제조업 생산기지로 커왔다. 일본은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하이엔드(High-end)기술, 한국은 미드엔드(Mid-end)기술 제품, 중국은 로엔드(Low-end)기술 제품에 특화한 분업구조를 유지하면서 제조업 생산기지가 된 것이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며 이 분업구조가 급격히 경쟁구도로 변화하고 있다. 철강·조선·전자 등 주력 산업 대부분이 중첩되는 3국은 서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글로벌 시장의 정상을 차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본·중국과의 ‘생존을 건 진검승부’에서 이겨야만 한다.

 일본은 이미 선진국 정상에 올랐지만 지난 20년간의 경기침체로 자칫 정상 아래로 미끄러질 수 있는 위기를 맞이했다. 그러나 부품·소재·장비 분야의 절대적인 비교우위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1500여 개 강소기업이 일본 경제를 튼튼하게 지탱해주고 있다. 중국은 신발·의류 등 전통산업에서 출발해 철강·석유화학 등 일괄공정형 산업을 거쳐 최근에는 가공조립형 산업의 경쟁력이 급속도로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IT산업 중 조립완성품 분야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 자동차·석유화학 등 전체 제조업 분야에서 최고의 경쟁력 확보를 시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3국 간 생존을 건 경쟁에서 한국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 중국·일본에 비해 인구 500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시장인 데다 양국에 비해 확고한 비교우위가 없기 때문이다. 부품·소재·장비 분야에서는 일본과의 기술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조립완성품 분야 경쟁력은 소수 대기업에 집중돼 있을 뿐 아니라 이조차도 중국의 추격이라는 위협에 노출돼 있다. 자칫 잘못하면 중국의 조립완성품, 일본의 부품·소재·장비에 낀 ‘산업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 사회는 2016년께부터 고령화 사회, 2025년께에는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한국 경제가 이 기간 안에 마지막 고개를 넘지 못하면 결국 선진국 정상에 오르지 못할 뿐 아니라 잘못하면 중국의 주변국에 머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이 경쟁에서 살아남아 정상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첫째, 부품·소재·장비 분야를 중심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다수의 중소·중견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동력의 주체로 삼아야 한다. 이런 강소기업이 한국 경제를 이끌고 가야만 경쟁이 치열한 마지막 깔딱 고개를 균형감 있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산업구조의 고도화와 고용문제 해결을 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비스산업의 고부가가치화가 시급하다. 서비스 산업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셋째, 좁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14억 인구의 중국 소비시장과 인도·아세안 등 신흥시장 개척을 위한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이 시장을 우리 내수 시장으로 인식해야 한다.

 깔딱 고개 앞에 선 한국은 양극화·복지수요·청년실업 등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경쟁 상대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지금 지속성장의 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정상은 더 멀어질 뿐이다. 새해엔 정부와 기업, 그리고 노동자 모두 마지막 깔딱 고개 넘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안현호 무역협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