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 과학자의 육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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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대한의학협회가 발표한 기초의학 분야의 현황 분석은 비단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우리 나라 과학·기술 교육 정책의 커다란 사각을 들춰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경고적인 뜻을 갖는다.
산부인과·외과·내과 등 돈벌이가 좋은 임상 전문의의 숫자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데 비해서 병리학·미생물학·생리학·해부학 등, 벌이가 시원치 않고 고달프기 만한 기초의학 전공자는 10여년 째 그 수가 늘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임상 의학과 기초 의학 사이의 심한 불균형이 벌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는 정확하고 세밀한 검사 분석을 통한 각종 질병의 진단에도 애로가 많아 기초 의학의 약점이 그대로 임상 의학의 실제에도 난점을 제시하는 일이 비일비재라 한다.
우리 나라에 있어서의 기초 및 임상 의학의 이 같은 불균형적 발달은 비단 의학의 분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좀 더 근원적인 반성을 촉구한다.
물리학·화학·생물학 등 모든 자연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우리의 기초 과학이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음은 이미 오래 전부터 뜻 있는 사람들이 지적해 온 바였다. 뿐더러 정치·법률·경제 등의 사회 과학 분야에 있어서도 실리 추구의 개인적 동기 때문에 응용 분야만이 지나치게 치중되어 왔고 순수한 학리의 탐구에 종사하는 사람은 갈수록 희귀해 가고 있는 형편이다.
모든 자연 과학 분야에서 기초의학의 개화 없이는 그를 응용하는 기술이 이내 벽에 부닥치고 만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에 속한다. 그렇기에 기초 과학 없는 기술이란 마치 꽃병에 꽂아 놓은 뿌리 없는 꽃이나 다름없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편의 현상은 이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볼 때엔 한나라를 끝내 기술 이식의 수급국 상태로만 정체시키게 됨을 의미한다.
물론 기초 과학의 육성이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분야 건, 한 사람의 기초 과학도가 탄생하기까지는 적어도 15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렇기에 더욱 기초 과학의 육성이란 지금부터라도 곧 대책을 강구해야 할 긴급한 과제라 할 수 있다.
거기에는 첫째 연구 자수의 증원과 둘째 연구 투자의 확충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양자는 서로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다.
우선 연구 개발 투자의 정당한 몫을, 가령 그 총액의 3분의1정도를 무조건 기초 과학의 육성에 투자해야 한다는 요청이 고려됨직 하다. 기초 과학을 전공하는 사람들의 창조적 활동을 촉발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활이 응용 과학 부문에 종사하는 사람에 비해, 크게 손색이 없도록 충분한 연구비가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요구이다.
뿐더러 기초 과학의 이론적 연구는 응용 과학에 징발되지 못한 「잔여」의 과학자들이 아니라, 바로 지도적 과학자를 중심으로 한 연구 체제를 갖추기 위해서도 그들의 활동을 최대로 존중하는 연구비 지급이며, 연구 시설 확보가 있어야 되겠다.
연구자 수와 연구 투자는 과학·기술 발전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한 나라의 사회 경제 발전은 자본에 못지 않게 이 같은 과학 기술의 발전 여하에 좌우된다. 오늘날의 국제 사회에 있어서 과학기술의 개발 경쟁이 모든 경쟁의 핵심이 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우리가 국제 사회에서 우리들의 지보를 굳히기 위해서는 지금 곧 기초 과학 육성을 위한 본격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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