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5) <제자 박갑동>|<제31화> 내가 아는 박헌영 (11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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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8·15 폭동 음모>
공산당이 「공위 경축 및 임정 수립 촉진 대회」 등을 여는 등 대중을 이용한 선전 선동을 끊임없이 벌이지만 공위는 그날을 거듭할수록 점차 난항을 면치 못했다. 이러자 공산당은 「공위를 한사코 사수하자」, 「앉아서 죽느냐 싸워서 이기느냐」는 구호를 내걸게 되었고, 당은 다시 민전을 앞장 세워 보다 적극적인 폭동 계획을 마련했으니 이것이 바로 「8·15폭동 음모 사건」이다.
즉 남로당은 7·27대회가 있은 지 20일도 채 못되어 8·15 기념 대회를 가장한 시위 폭등으로써 경찰과 우익 진영을 압도하고 일시에 공산 정권을 세우려고 기도하였다.
이 계획은 당초 북한 주재 소련군사령부 정치 위원회 「사부싱」의 직접 지도하에 해주에 도피 중인 박헌영과 서울의 허헌·이기석·이주하·이승엽·김삼룡·구재수·김용암 등이 주동이 된 것이다.
당시 남로당이 합법 기념 대회를 가장, 시위 폭동을 꾀했던 모임의 집행 부서를 보면 의장단에 허헌 (남로당 위원장·민전 의장), 김원봉 (인민공화당 위원장·민전 의장), 박헌영·김창준 (기독교 민주 동맹 위원장·민전 의장), 부회장단에 성주식 (인민 공화당 부위원장·민전 부의장), 김응섭 (전국 유교 연맹 위원장), 이기석 (남로당 부위원장), 이인동(남로당 노동부 부책·전평부위원장), 최원택 (남로당 감찰 위원장), 유영준 (조선 민주 여성 동맹 위원장·민전 의장), 정노식 (조선 신민당 남조선 부위원장), 홍남표 (노력 인민 사장) 등이었고 대회 위원장에는 이승엽, 부위원장에 김광수 (서울시 민전 의장), 윤징우 (인민 공화당 선전부장) 등이었다.
그때 공산당의 계획은 비합법적인 폭동 시위를 은폐하고 합법 대회를 가장하여 군중들을 동원하되, 당국의 집회 허가 여부를 막론하고 시위를 감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합법 면에 민전이 중심이 되어 준비 위원회를 조직하고 당국과 표면상 교섭을 벌이는 한편, 극비리에 비밀 투쟁 위원회를 구성, 8월15일 상오 2시를 기해 일제히 봉기하여 방화·살해·파괴 및 시위를 피상적으로 전개토록 했다.
폭동 계획을 모의한 수뇌층의 이같은 지령이 남로당 중앙정치위원회에 전달된 것은 7월말쯤으로 당은 이 방침에 따라 다시 폭동 준비 지령 8개 항목을 결정하고 이를 중앙상임위원회 13개 부장에게 집행토록 명령하는 동시에 8월5일까지 서울시를 비롯한 각도에 지시했던 것이다.
여기서 당시의 폭동 준비 지령을 소개해 보면 ▲공위가 난관에 봉착했으니 이를 성공시키기 위해 하급 군중을 강력적으로 투쟁에 동원시킬 것 ▲조직을 강화하여 8·15행사에 인구의 20%이상 다수를 동원할 것 ▲어떤 강압에도 능히 투쟁할 수 있도록 하부 조직과의 연락망을 공고히 할 것 ▲보통선거법이 실시될지도 모르니 남조선 단독 실시를 반대하고 남북을 통일한 민전의 선거 행동 강령에 의하여 총선거를 실시토록 주장할 것 ▲8·15 행사는 좌익계열의 사활 문제이므로 사력을 다해 추진할 것 ▲자위 태세를 확립하여 면 단위로 1백명 이상씩의 자위대를 확보, 군에는 사령부를 설치하고 도당 위원장이 지도할 것 ▲합법 면에 민전을 내세워 집회허가 투쟁을 전개하는 동시에 극비리에 도·군·면 세포에 이르기까지 비밀 투쟁 위원회를 조직, 중앙의 지령이 있을 때는 언제든지 투쟁을 감행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출 것 등이다.
이같은 지령에 따라 각급 당부 및 세포에서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준비 작업에 들어갔는데 서울에서는 영등포구 당이 가장 활발했던 기억이 난다.
즉 그 실례를 보면 동구 당 위원장 박용하, 부위원장 겸 조직·총무부장 김영준, 선전부장 김덕인, 청년부장 우봉수, 부녀부장 장상림 등이 상부인 서울시 당 조직 지도원 공원식의 지도를 받았다.
이들은 8월7일 아침 10시 상도동 주택영단 45호에 있는 부위원장 김의 누이 집에 모여 그 실천책으로 김영준은 공장부문, 김덕인은 선전부문, 우봉수는 자위대 조직을 각각 맡았다.
또 8월9일에는 김영준을 총책임자로 하는 자위대가 결성되어 그 밑에 강남지구 일반자위대 (대장 정용봉), 특수 자위대 (대장 이종수)를, 그 밑에 각각 6개 소대를 두었다. 여기에서 일반 자위대는 동원 군중의 경호와 함께 경찰이 출동하여 맞붙을 때에는 그들과 싸움을 벌여 경찰의 주력을 시위 장소에 집중시킨 다음 이들을 이용해 특수 자위대로 하여금 각기 담당 경찰서를 습격케 하는 임무를 맡았다.
특히 영등포구의 흑석1, 2, 3동 및 상도동·노량진동 등 이른바 강남지구는 경찰의 제지가 거의 없을 것이 예상된다고 분석되어 군중의 투지가 강하게 발휘될 수 있으니 영등포구 특수 자위대의 응원을 받아 한강·명수대 등 각 파출소를 직접 일반 자위대가 습격하여 무기를 뺏도록 계획했다. 특수자위대는 출동시에 각기 식칼·도끼·창·곤봉 등 흉기를 반드시 지니도록 했다.
실로 그 계획 자체만도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는 이를테면 방공 시대라 이를 만큼 공산당의 활동이 어느 정도 묵인되었고 좌우 합작을 앞세운 대중 포섭 공작의 시대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계획이 가능했었다.
앞서 말한 계획이 착착 준비되어 중앙당의 지령을 기다리던 8월13일 각급 당부에는 「폭동 행동 지령 4항」이라는 비밀 문서가 전달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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