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숙일 줄 모르는 구주 통화 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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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지난 5월말 서독 「마르크」대의 5·5% 절상에도 불구하고 서구를 휩쓸고 있는 국제 통화 동요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8일 선진 10개국 중앙은행장이 모인 국제 결제 은행 (BIS) 회의는 「달러」위기를 수습하고 금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① 미국 보유금의 자유 시장 매각 ②서독·일본 등 강세 통화의 「달러」매입 지원 ③이번 주 안에 긴급 재상 회의를 소집하는 문제 등을 토의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또 미국이 과잉 「달러」의 환수를 위해 서구 외환 시장에 직접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
이번 구주 통화 파동의 계기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닉슨」 정부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데 있다.
가뜩이나 불안하던 「달러」에의 신임이 없어지자 공동 변동 환율제에 속한 통화 중에서도 가장 강한 「마르크」로 투기가 몰려들게 됐던 것이다.
서구 각국은 「마르크」 지원에 나섰으나 거기에도 한계가 있어 「마르크」화 절상을 가져왔지만 투기열은 좀처럼 식을 줄 모른다.
공동 변동 환율제는 경제 성장 속도·국제 경쟁력·기술 수준의 차이가 없어야 소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약점을 갖고 있고 8 내지 9% 절상하리라던 「마르크」 절상 폭이 예상보다 낮았던데 원인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달러」로 대표되는 「페이퍼·머니」에 대한 불신감이 근본 이유이다.
그리고 이 불신의 이면에는 지난 1년간 계속된 「인플레」가 있다. 공동 변동 시대에 들어서자 각국 정부는 국제 수지 적자에 별로 신경을 안 쓰게 되고 국민이 싫어하는 긴축 정책을 취하는데 주저하여 결국 「인플레」억제에 실패했다.
이 결과 주요국에서 환물 운동이 일어나고 투기에 눈이 벌건 「유로·달러」는 「인플레·헤지」선을 찾아 다국적 기업을 통해 구주 통화로 달려들고 있다.
지금의 상태에서 구주 통화 당국이 생각할 수 있는 당면 대책은 미국의 외환 시장 개입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우선은 「패닉」 상태에 빠진 외환 시장을 폐쇄하여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다.
그 첫째 대책은 「마르크」화의 재절상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과잉「달러」가 「마르크」 재절상으로 흡수되리라고 보기는 어렵다. 「프랑」화의 절상을 예상할 수 있지만 국제 수지 균형이 되고있는 서독과 같이 하면 몰라도 단독 절상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면 「달러」와 「파운드」화의 대응책은 어떨까. 「달러」는 이미 바닥으로 내려갔으므로 절하한다해도 별효과가 없다. 「파운드」화는 「달러」권에의 무역 비중이 20%를 넘고 있어 「달러」 절하를 즐겨할 수 없는 입장이다.
EC (구주 공동체) 6개국이 공동 변동 환율제로 이행할 때 『공동 변동이 어려울 때는 일시적으로 이를 정지할 수 있다』는 예외 규정에 따라 공동 변동 환율을 떠나 단독 변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에는 과잉 「달러」 대책, 「달러」의 금 교환성 회복 등의 보증이 있어서 곧 공동 변동 환율제로 복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국제 통화 제도가 근본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재의 자유 금시장의 금값 폭동은 금이 과소 평가 되어있기 때문에 상품 투기 대상이 되는데 까닭이 있다.
그러므로 각국은 공적 보유 금을 자유 금시장에 내다 팔아 금가를 「플로트」시키고 과잉「달러」를 흡수하는 한편 미국은 강세 통화국에 장기채를 발행, 인수시키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드래스틱」한 방법이 용이하게 시행될지는 의문이다.
요컨대 구주 통화 파동은 현행 국제 통화의 모순이 현재화하고 있는 것이며 앞으로의 사태 전개가 명확한 예측을 불허한다는데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외신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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