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4)|화랑의 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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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경주 남산 「화랑 바위」에 위치>
삼국을 통일한 화랑도의 기상이다. 빛나는 문화를 이룩한 신라의 슬기이다. 그 얼, 오늘에 이어 받으려 화랑도의 본 고장, 여기 경주에 「화랑의 집」이 세워졌다. 2억3천여만원을 들여 지난 3일 준공된 이 집은 신라의 화랑도가 청소년 중심이었듯이 이 나라의 내일을 걸머질 젊은이들을 위한 획기적 수련도장이다.
옛 수련장 남산을 배경 삼아 웅장한 시설을 마련했다는 점도 한층 의의를 갖는다.
여기서 학생들이 합숙하며 화랑의 정신을 배우고 무예를 익힘으로써, 강하고 참된 새 한국인을 육성하려함에 그 뜻이 있는 것이다.
「화랑의 집」의 위치는 남산의 동쪽 기슭 「화랑 바위」라 일컬어 오는 자리.
경주 시내에서 불국사에 이르는 길의 중간쯤. 선덕여왕릉의 맞은편으로 길을 꺾어 약 1km에 있는 우거진 숲 속이다.
산록 경사 면에 철근 「콘크리트」의 한식 구조로 하여 「ㅁ」로 자형의 건물을 세웠는데 총 건평 2천9백36평방m, 그 대지는 21만평방m에 달하지만 남산 일대를 다 포괄하게 돼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높다란 돌층계 위로 2층의 대 수련장이 우람하게 서 있다.

<1만6천평만m의 운동장도>
여기 5백91평방m의 강당은 화랑에 관한 강의와 신라 예술, 그 밖의 실내 교육을 받는 대 교육장이며 그 아래층은 공동의 식당이다.
주 건물 좌우에 늘어선 연립 맞배 집은 축사. 총 20여실에는 한번에 3백36명까지 수용하게 되어 있다. 앞면 건물은 대문과 관리실 등이다.
그리고 1만6천평방m의 운동장에는 각종 운동 시설을 갖추었고 뒷산은 곧 야영과 등산을 위한 터전이 된다. 앞으로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도 마련 할 계획이며 곁들여 민속촌까지 갖추어진다면 최초의 학생수련·수학의 본보기 장소가 될 것이다.
이는 경북도 교육 위원회가 학생 복지 시설 기금 1억6천만원을 토대로 하여 건립한 것이기 때문에 우선은 경북 도내 중·고등학생의 수련장으로 운영될 계획이다.
3일간 합숙하는 비용이 1인당 1천원 정도. 그러나 앞으로는 전국의 학생들에게 개방될 것으로 내다보이며 외국인과 교사 및 수학여행 학생의 「유드·호스텔」로도 겸용하게 되리라 한다. 그러나 「화랑의 집」의 핵심은 어디까지나 화랑 정신을 배우고 널리 선양하자는데 있다. 학생들의 단기 합숙 수련장으로 쓰이는데 그치지 않고 화랑도 연구의 거점으로 꾸미게 된다.

<3일 합숙 비용 1인당 천원>
그래서 화랑에 관한 모든 자료를 여기에 조치하는 한편 그에 관한 책자도 출판한다. 물론 이것은 요원한 구상이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신라 화랑을 재현시키겠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다짐이다.
화랑도는 신라 국가 사회의 근거이다. 그 사회의 책 소년들 가운데 「엘리트」를 선발해 평소에 심신을 닦아 놓았다가 나라가 위급할 때는 싸움터의 선봉이 되고 성장해서는 정사의 요직을 맡아 일했다.
그들은 당초 심산에서 마음을 가다듬으며 산야를 뛰어 무술을 닦았다.
김유신은 일찌기 경주 단석산 석굴에서 삼국 통일의 비법을 깨우쳤다고 하거니와 그것은 바로 신앙을 통한 정신 수련의 수단이었다.
남산은 화랑이 오르내린 본거지가 되고 남으로 울주 반귀대 각석에도 화랑의 수련 흔적이 역력히 남아 있다.

<그 위업 이어 새 역사 창조를>
화랑은 신라 초부터 고유 신앙의 비호 아래 뭉쳐진 신라 특유의 슬기롭고 굳센 청소년 집단이다. 그러나 화랑에 관한 기록은 제24대 진흥왕 23년 (562년) 대가야 정벌에서 명장리사부를 따라 화랑 사다함이 큰 무공을 세웠다고 나타나는 것이 처음이다.
제26대 진평왕 때의 고승 원광법사가 귀산과 추항 등 두 화랑도에게 준 사군이충·사친이효·교우이신·임전무퇴·살생유택 등 세속 오계는 뒤에 화랑의 신조가 됐으며 나라를 위해 몸바친 무수한 젊은이들을 낳게 한 신라무사정신의 바탕이 됐다.
이 같은 화랑의 사상은 신라 문화의 바탕이 되고 당시 사회의 활기가 되며 국력의 초석이 되었다. 여기서 신비롭고 아름다운 천년 신라의 역사가 태어나고 장식된 것. 오늘 그 얼을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이어받게 함으로써 야망의 내일을 창조하려는 것이야말로 거창한 구상이요, 위업이 아닐 수 없다.
글 이종석 기자
사진 김택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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