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은 창업 기 죽이는 장벽 여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과 달리 국내에서는 여전히 창업가 정신을 북돋우는 데 실패하고 있다. 정부는 ‘5·15 벤처활성화 대책’ 등을 발표하며 창조경제의 첨병으로 벤처를 장려하고 있지만 ‘창업가 정신(entrepreneurship)’ 형성을 막는 법적·제도적 장벽들은 여전하다.

 우선 벤처기업인들이 줄곧 얘기해 온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 문제는 아직도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 연대보증 폐지 정책은 창업자가 아니라 제3자에 국한돼 있다. 창업자 연대보증은 법인 대표이사나 무한책임사원, 최대주주, 지분 30% 이상 보유자 중 1인에게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묻는 제도다. 그동안 창업자 연대보증은 창업자 자신뿐 아니라 친척·친구 등 지인들까지 빚의 구렁텅이로 내몰아 벤처기업인들의 ‘족쇄’로 지목돼왔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까지 올 9월과 이달 4일 두 차례에 걸쳐 “창업자 연대보증 등 창업 초기에 투자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표적 벤처기업인인 남민우(벤처기업협회장 겸 다산네트웍스 대표) 대통령직속 청년위원장은 29일 “대통령이 얘기해도 쉽게 따르지 않는 게 관료 세계”라고 비판했다. 남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창업자 연대보증 폐지를 약속해도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실천 의지는 실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9월 대통령 면담 때부터 약속을 받았는데 연말까지 제대로 바뀐 게 없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청이 올 10월 발표한 ‘중소기업 재도전 종합대책’에서도 창업자 연대보증 면제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을 비롯한 정책금융기관 위주로만 한정돼 있을 뿐 시중은행을 비롯한 민간 금융업체는 제외됐다. 여기에 정책금융공사·산업은행 등 다른 기관들은 현재까지 여전히 뚜렷한 입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벤처 1세대인 이민화 창조경제연구회장은 “연대보증 해소로 발생할 수 있는 기술보증기금·신용보증기금 등 국책보증기관의 손실금 약 3000억원만 우선 청년창업 활성화 지원금으로 보전해 줘도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쟁에 여념 없는 여야 정치권과 시민사회도 여전히 창업가 정신의 고양을 막는 장벽이다. 중앙일보 조사 결과 5·15 벤처활성화 대책과 관련한 법률 개정안 중 중소기업창업진흥법만이 6개월 만인 이달 26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소기업창업진흥법은 창업투자조합이 코넥스 상장기업에 투자할 경우 투자 제한 조건(출자금의 20% 이내에서만 투자 가능)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안이다.

 이를 제외한 다른 법안들은 여전히 국회 처리가 미지수다. 특히 대기업의 벤처기업 인수를 활성화할 목적으로 지주회사의 증손회사 편입 요건을 완화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일부 야당 의원과 시민단체들이 “대기업을 위한 특혜”라고 주장하면서 법안 처리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5·15 대책 발표 당시 기재부·중소기업청 등 정부 부처는 “대기업 지주사가 벤처기업을 증손회사로 인수하기 쉽도록 현행 지분 투자 비율(100%)을 50% 수준까지 완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두산그룹은 2000년 100억원을 출자해 벤처캐피털 업체 ‘네오플럭스’를 설립했으나 공정거래법 규제로 인해 지난해 말 그룹에서 분할했다. 두산 관계자는 “현행법상으로는 대기업이 벤처에 지분투자를 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밖에 ▶에인절투자자에 대한 소득공제 비율 확대(현행 30%→개정안 50%) ▶기술혁신형 인수합병(M&A)에 대한 법인세 공제제도 도입(기술가치 평가 금액 중 10%를 법인세에서 공제) 등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도 연내 국회 통과만을 기다리고 있다.

김영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