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시장 취임식 잔칫날 클린턴 부부 '주연급 조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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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내년 1월 1일 정오(현지시간) 세계 경제의 심장 뉴욕에서 민주당의 빌 더블라지오(52)가 시장 취임식을 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12년간 뉴욕을 이끌어온 마이클 블룸버그(71) 시장은 물러난다. 그의 퇴장과 함께 1993년 루돌프 줄리아니 시장 시절부터 이어진 20년 보수파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됐다.

 이날 취임식의 표면적인 주인공은 더블라지오다. 그는 글로벌 위기 이후 무너진 중산층과 서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업고 지난달 109대 뉴욕시장으로 당선됐다. 전임 블룸버그 시장은 9·11과 금융위기 속에서 뉴욕 경제를 일으켰지만 양극화를 막지는 못했다. 더블라지오의 ‘부자 증세’와 ‘서민 지원’ 공약은 벌써 미국 사회의 관심이다. 월가 금융계의 반발 속에 그가 세금 인상에 성공하면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날 취임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다. 더블라지오는 클린턴 전 대통령 앞에서 선서를 할 예정이라고 시장 인수위원회가 28일 밝혔다. 힐러리 전 장관은 남편 클린턴 대통령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다.

 더블라지오와 클린턴 부부의 인연은 깊다. 더블라지오는 클린턴 대통령 시절 주택도시개발부에서 지역담당 국장으로 일했다. 힐러리가 2000년 뉴욕주 상원의원에 출마했을 때는 선거 캠페인 핵심 참모로 활동했다. 더블라지오는 “두 사람 모두 취임식에 참석하는 것은 영광이다. 더할 수 없이 흥분된다”고 말했다.

 뉴욕시장이 전직 대통령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블룸버그 시장이나 줄리아니 시장 등 전임자들은 판사들 앞에서 선서를 하는 관행을 따랐다. 바로 이 대목에 더블라지오 취임식의 정치학이 있다. 클린턴은 1990년대 민주당 전성기의 상징 인물이다. 더블라지오로선 클린턴이 주재하는 취임식을 통해 20년 만에 뉴욕의 정치 권력을 민주당이 되찾아왔다는 상징적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취임식은 힐러리에게도 중요하다. 새해 첫 날 뉴욕시장 취임식에는 전국적 관심이 쏠린다. 여기에 새로운 뉴욕시장과 당원들의 환호 속에 모습을 드러내면 전국적인 지명도를 더욱 굳건히 할 수 있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잠재적 대선 경쟁자인 크리스 크리스티(공화당) 뉴저지 주지사 견제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현재 힐러리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힐러리는 각종 가상 대결 여론조사에서 모든 공화당 잠재 후보를 월등한 격차로 앞서면서도 유독 크리스티 주지사에겐 밀리고 있다. 이달 중순 아이오와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된 여론조사에도 40%대 45%로 힐러리가 졌다.

 힐러리가 크리스티를 크게 의식하는 것은 단순히 여론조사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의 친정인 민주당 내에서도 크리스티 지지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지원을 늘리고, 수퍼 태풍 샌디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처를 높이 평가하는 등 초당적인 행보로 민주당원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세력이 강한 뉴저지에서 그가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결국 힐러리는 취임식의 스포트라이트를 통해 자신이야말로 민주당의 적통을 잇는 리더임을 환기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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