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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밥 한 끼가 아니다 아직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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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호 26면

저자: 염창환·송진선 출판사: 예담 가격: 1만3800원

10여 년 전 사회부 기자 시절, 호스피스 병동에서 근무하던 분이 큰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보다 입체적으로 기사를 쓰고 싶어 인터뷰와 현장 취재를 요청했지만 답변은 둘 다 노. 죽음을 팔고 싶지 않다는, 완곡하지만 단호한 거절이었다. 머쓱해졌지만 마음을 고쳐먹었다. 기사 욕심에 혹 죽음을 상품화하려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수 있었다.

『치유의 밥상』

드라마를 기획하는 송진선 PD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죽음을 앞둔 삶의 감동 스토리를 들려주기 위해 호스피스 병동 사람들을 주제로 드라마를 구상했지만 막상 취재에 나서자 그것이 “단지 머리로만 짜낸 상품 기획일지도 모른다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힘을 준 것은 국내 최초의 완화의학과 교수인 염창환 박사였다. 이 책은 송PD가 염 박사의 협조를 통해 만난 29명 환자들의 이야기다.

음식과 관련해 풀어낸 구성이 독특했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때우는’ 한 끼의 식사가 어떤 이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소원인지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들에게 밥 한 끼는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자 삶을 지탱해주는 추억의 동력일지니. ‘아들이 남긴 바지를 입으며-호주머니 속의 육포 한 조각’이나 ‘아내라는 꽃이 지다-시어머니가 차려준 밥상’ 등 제목만 봐도 뭉클하다.

‘열일곱 소녀의 종이 밥상’은 백혈병을 앓고 있던 미승이의 이야기다. 어느 날 송 PD는 자신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여고생의 요청을 받는다.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한다.

“내일을 살기 위해 치료받는 게 아니라 ‘오늘’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기로 했어요. PD 언니 인터뷰도 재밌을 것 같아서 해달라고 했고요.”

미승이는 부모님과 친척 등에게 자신이 17년간 어떻게 살았는지 물어가며 자기의 위인전을 만들고 싶어했다. 3년 전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아플 때마다 몸의 증상도 세세하게 기록했다. 백혈병 약 개발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며. 치료 중에도 까르르 웃음을 잃지 않던 여고생의 얼굴에서 송 PD는 묵직한 질문을 읽어낸다.

‘힘들다, 죽고 싶다, 불공평한 세상 때문에 뭉개졌다 불평하는 당신의 삶이 내가 대신 살고픈 소중한 삶이란 걸 알고 있나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심통 부리는 당신의 삶을 나에게 떼어준다면 내가 당신보다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걸 아나요?’

‘지금의 당신은 정말 행복하다는 걸, 그저 익숙해서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걸 아나요?’

그리고 어느 날 송 PD에게 날아온 소포. 그 속에는 사탕, 쿠키, ‘쫀드기’ 같은 불량식품, 잡지에서 오려낸 먹음직스러운 케이크와 아이스크림 사진이 가득했다.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어 몰래 숨겨두었던 미승이의 과자상자였다.

염 교수는 말한다. “호스피스 병동은 결국엔 행복을 찾은 곳이기도 합니다. 가슴의 응어리를 풀고 웃을 수 있고, 무엇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인연을 맺은 이들이 늘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앞두고도 미소를 잃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기록이자 죽음에서 삶을 배울 수 있는 생생한 교과서다.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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