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마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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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그동안 서울시내에서 연쇄적으로 밤길 처녀들을 자상해온 범인이 여자에 대한 복수심에서 저질렀다고 말했다.
끔찍스런 얘기다. 복수란 본시 끔찍하고 무서운 거다. 「아이스퀼로스」가 비극<에우메니데스>에서 그려낸 복수의 여신 「에리니에스」부터가 무섭다.
소름이 끼칠 만큼 창백한 얼굴에 시꺼먼 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카락에는 살모사를 칭칭 감겨놓고 있고 눈에는 새빨간 피가 맺혀있고 부드득 이를 갈고…. 그리고 그녀는 또는 그녀들은 언제나 황천의 왕 「하데스」나 그 왕비 「페르세포네」곁에 앉아있다.
그녀는 때로는 날개를 달고 있을 때도 있다. 그만큼 빨리 복수한다는 뜻에서이다.
그녀는 용서할 줄을 모른다. 관용도 모른다.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해서 「오이디푸스」왕에게 벌을 내린 것도 「에리니에스」였다.
그녀의 벌은 끔찍스럽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것도 지상에서만 끝나는 게 아니라 사후에까지 계속된다.
이토록 무서운 복수의 여신을 대로는 자애의 여신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녀의 복수란 자연질서의 위반자에 대한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복수의 여신을 만들어낸 것은 서양사람들의 상상력이다. 그리고 보면 「복수」라는 개념도 서양에서 나왔다.
동양에서는 복수라는게 별로 강조되지 않는다. 자비가 오히려 더 강조된다. 아무리 고덕의 인사라도 악에 물들 가능성이 있는가하면 악인에게도 불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만한 너그러움이 서양인에게는 없다고 할까. 서양인의 사상이며 종교의 기조가 돼있는 『영원의 벌』, 원죄라는 것도 우리에게는 전혀 생소한 얘기다.
그리고 보면 우리는 툭하면 『백지화』란 말을 잘 쓴다. 아무리 큰 죄나 과오가 있다 하더라도 어느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백지처럼 씻어주고, 잊어준다.
좋게 보면 관용과 유화의 정신이 많다. 나쁘게 말하면 그만큼 집요한데가 없다고나 할까.
대립이나 대결의 의식이 희박한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보다는 오히려 죄의 의식이 강렬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보는게 더 옳을 것도 같다.
죄의 의식이 강렬하지 못할 때 벌이 두려워질 까닭이 없다. 그리고 벌이 두렵지 않는 곳에 복수의 여신이 태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번 자상범인은 자기에게 병을 옮겨준 여자에 대한 복수심에서라고 했다. 사실은 증오에서였다는게 더 정확한 말이었을 것이다. 증오만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 더 깊이 파 들어가 보면 증오도 아무 것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하나의 감정이 원래의 대상에서 다른 곳으로 이행될 때 이미 그것은 원래의 감정과 달라지는 것이다.
범인은 『여자의 얼굴을 긋는 순간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은 이런 변태심리 속에 진짜 동기가 담겨 있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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