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코레일 적자 혈세로 메워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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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부가 철도 파업에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비난이 일자 뒤늦게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6일 오후 3시 ‘경제와 민생안정을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현 부총리는 “명분 없는 파업을 계속하는 것은 국가경제의 동맥을 끊는 것이고 경제회복의 불씨를 끄는 위험한 일이 될 것”이라며 “방만경영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국민의 혈세로 매년 메워 넣어야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가파른 부채 증가 속도 ▶민간에 비해 2배 이상 높은 임직원 보수 ▶직원 자녀로의 고용세습 등 방만경영의 증거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국토부도 이날 ‘유럽 철도운영 경쟁도입 현황’이란 자료를 내고 스웨덴·영국·프랑스·독일 등이 철도에 경쟁체제를 도입한 후 흑자로 바뀌고 이용객도 늘었다며 경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현 부총리의 담화 발표는 성탄절인 25일 부랴부랴 결정됐다고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4일 철도 파업과 관련해 장관들에게 ‘왜 남의 일 보듯이 하느냐’고 질책을 한 뒤에 담화 준비를 하게 됐다”며 “대통령은 (수서발 KTX 자회사를 설립하면) 어떤 게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지 하나하나 설명을 하라는 취지로 지시를 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의 방만경영에 대한 수술이라는 핵심은 알려지지 않은 채 ‘민영화 반대’라는 노조 측 구호만 부각되면서 “여론에서 밀렸다”는 지적이 일자 대통령이 이를 질타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24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철도노조 파업의 부당성과 코레일의 자회사 설립 당위성 등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적극적으로 강화하겠다”며 홍보전 강화에 나섰다. 하지만 파업 시작(9일)과 민주노총 사무실에 대한 공권력 투입(22일) 등을 감안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대응이다.

 26일로 파업 18일째를 지나며 장기화한 데는 정부의 대응전략 부재를 꼽는 의견이 많다. 2003년과 2009년의 철도 파업 때는 여론이 파업에 강경한 입장을 취한 정부에 우호적이었던 데는 정부의 ‘준비된 대응’이 효과를 얻었다는 분석이다. 2003년 당시 최종찬 건설교통부 장관은 파업 이틀째인 6월29일 우리 사회의 여론주도층 15만 명에게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불법 집단행동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e메일을 보내 파업 초기부터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2009년에는 정부가 “불법 파업에는 엄정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며 동시에 국민에게는 “불편을 참아달라”는 협조 요청을 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노조가 파업을 예고하던 시점에 정홍원 총리(8일)나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6일)은 국회에 출석해 “(자회사 설립은) 철도 민영화가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식의 소극적인 대응에 그쳤다. 대국민 설득도, 파업 노조와의 대화도, 파업에 대비한 비상대비책도 준비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청와대 관계자는 26일 “처음에는 민영화 논란이 있었지만 이제는 철밥통 노조를 비판하는 여론으로 반전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결국 여론전도 이기게 될 것”이라며 낙관론을 폈다. 한편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는 노조와 대화하고 국회는 철도사업법 ‘원 포인트’ 개정으로 이 파국을 ‘원샷’에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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