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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고의 금속활자본 「청량답순종심요법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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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청량답순종심요법문』 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금속활자본으로 밝혀짐으로써 한국의 금속활자 문화의 우수성이 다시 입증되었다. 고려대 중앙도서관에서 한적 재정리 중에 발견된 이 책은 비록 모두 5장을 4분해서 접어 만든 20면에 불과한 소책자이지만 발문이 있는 마지막 한 장이 주자로 인쇄된 것임이 밝혀짐으로써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금속활자본의 위치를 확보하게 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현존 최고의 금속활자본은 지난해 「파리」국립도서관이 「책의 역사」종합전에서 공개했던 1377년 고려 우왕 3년간 『백운화상초록 불조직지심체요절』이었다.
『직지심체요절』은 국내에서 『직지심경』이라고 잘못 불려진 것이지만 서양의 「구텐베르크」가 1452∼1456년 사이에 출간한 『사십이행성서』보다 80년 가량 앞선 점에서 최고금속활자본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직지심체요절』보다도 79년 내지 80년 앞서 1297∼1298년에 간행된 『심요법문』의 발견은 「구텐베르크」를 1백60년 가량 앞서는 보물자료로서의 뜻을 갖는 것이다.
한국이 오랜 금속활자 인쇄국이라는 것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 책의 발견은 그 점을 더욱 확인하는 것이 된다.
물론 현존하지는 않지만 기록상으로는 『고금상정예문』의 주자인쇄가 1234년(동국이상국집)에 이루어졌으며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인쇄가 1239년에 이루어진 것이 나타나 있다. 때문에 한국의 금속활자 인쇄는 가장 오랜 연원을 갖는 것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목활자본 인쇄물로서도 『심요법문』은 가장 오랜 것이 된다. 1397년 조선왕조 태조 6년에 간행된 『이태조개국공신녹권』이 가장 분명한 목활자본으로서 나타나 있고 또 그보다 앞서 『속장경』이 1090년 고려선종 7년께 목활자 또는 목판으로 이뤄졌다고 하며 『고문진보』 『산곡시주』등이 고려목 활자라는 설이 있지만 확증할 수 없었다.
8세기초(710∼720년) 간행으로 확인된 신라의 석가탑대타나니가 세계에서 가장 오랜 목판인쇄물인 것은 물론 한국의 자랑이지만 이번 『심요법문』의 발견은 최고활자인본의 국내소유라는 점에서 자랑을 더하게 된 것이다.
세로 21.3㎝, 가로 13.3㎝, 두께 4㎜인 이 책은 당의 순종이 「유심」(우주의 종국적 실재는 마음 뿐으로서 외계의 사물은 마음의 변현이라는 뜻)에 관해 당시의 국사인 청량화상징관에게 묻고 국사가 대답한 것을 요약한 것인데 이를 정혜선사 종밀이 주석을 붙여 해설하고 다시 혜달국사 지엄이 분류하여 책을 만든 것으로 그 원본은 원에서 간행했으며 이를 우리나라에서 다시 간행한 것이다.
때문에 본문은 윗 부분에 목판으로 청량의 답이 양각됐고 아랫부분에 종밀의 주가 목활자로 조판됐으며 그 사이마다 지엄의 분류가 목판으로 음각돼 있다.
첫장 머리에 인물화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판화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됐다.
이 책이 특이한 것은 발문 86자가 금속활자로 된 것 외에 본문이 목판과 목활자 조판으로 섞여 있다는 사실이다. 발은 본문과는 따로 찍어서 덧붙인 것이라는 점에서 금속활자의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간년과 간지는 발문의 기사로 추정되었다. 「중봉대부」라는 위계는 고려 충렬왕 1∼24년 사이(1275∼1298년)에 있던 것이며, 「숭복사」도 고려사 기록에 나오는 것. 또 「별부화」는 충선왕과 함께 원의 무종을 옹립한 인물로 충선왕의 즉위년(1270년)과 원으로의 귀환년(1298년) 사이에 고려에 다녀갈 가능성을 가진 왕의 측근 인물인 것이 추정된 것이다.
손보기 박사는 ①글자전체의 인상이 나무와는 달리 자획의 끝이 둥글고 부드러우며 ②글자의 먹물이 금속활자 특유의 반점을 나타냈으며 ③목리가 없는 것으로 금속활자임이 틀림없다고 말하면서 또 ①판식 ②지질 ③장정 등에서 고려인쇄본의 특징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심요법문』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확증하는데는 몇 가지 더 보완해야할 문제가 따른다.
천혜봉 교수는 이 책의 발문이 금속인쇄인 점에 동의하면서 ①왜 발문만이 따로 붙여졌나 ②책은 언제 만들어졌나하는 의문은 더 연구돼야겠다고 했다.
조선기의 주자 유판술과는 달리 계선이 없는 것은 고려주자본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조선시대 복각본에도 없어 그것이 고려의 조판술에 따른 것인지 아직 의문이라는 것. 조판기술상 계선을 안보이게 하는 방식이 고려 때 있었던가 하는 것이다.
또 사찰 주조본에서 보듯이 명문을 새기듯 금속판에 글자를 넣어서 인쇄한 것인가? 그렇다면 글자배열이 비뚠 것은 무엇인가 더 상고해 봐야겠다는 것이다.
간행 연대에 대해서도 그것이 『심체요절』보다 앞서는 것임에는 틀림없으나 과연 정확하게 1297∼8년으로 못박을 수 있을지 의문을 표하는 것이다.
간행인인 「중봉대부 숭복사 별부화」가 해결의 열쇠인데 과연 이것을 간단히 볼 것인가?
중봉대부가 1275∼98년 사이의 정삼품 위계인 것은 기록에 나오나 원나라 사람 「별부화」가 과연 충선왕을 따라 고려에 왔던가? 또 「별부화」가 바로 고려사의 그 인물인가? 원인 별부화가 고려의 위계를 가지고 책을 간행했다고 단정할 수 있나? 또 혹시 중봉대부 등 벼슬이 원의 것이 아닌가 하는 등이 의문점이라고 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한편 손보기박사는 이미 72년말 독일 「구텐베르크·인스티투트」에서 간행한 『「구텐베르크」연구의 현상』에서 한국 및 중국의 고활자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고 『직지심체요절』이 세계최고 금속활자본이며 한국이 인쇄문화의 세계적 시원임을 밝혀 서구학계에 관심을 일으켰었다.
손 박사는 이번에 발견된 『청량답순종심요법문』과 자신이 가진 고려금속활자본들, 그리고 앞으로 공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고려금속활자본들을 가지고 75년7월 미국 「샌프런시스코」에서 열릴 국제역사학자대회에 참가, 『고려시대의 한국의 인쇄술 발명과 그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에 관해 발표, 세계학계의 공인을 받는 활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 대회에서 한국의 인쇄술이 1313년 원의 주석활자로 연결되고 「아라비아」인의 인쇄술로, 다시 이것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연결되는 것을 밝힐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어떻든 이번 『청량답순종심요법문』의 발견은 이것이 세계최고의 현존금속활자본을 입증하는 대상으로서 등장한 만큼 학계의 보다 신중한 연구가 뒤따라야 할 것 같다. <공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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