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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9)내가 아는 박헌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우익진영과의 합작에 실패한 몽양은 8월17일 황급히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부서를 보면 위원장에 여운형, 부위윈장에 안재홍, 최근우, 조직부에 정백, 선전부에 조동우·최용달, 무경부에 권태석, 재정부에 이규갑…등으로 얼핏 보아도 공산주의자가 절반이었다.
앞으로 있을 미군의 진주와 미군정의 실시를 예상하지 못하고 출발한 건준은 당시 사회적 혼란에 편승하여 정부연한 태도로 행세했다. 그들은 투옥됐던 정치범의 석방에도 관여하고 치안에도 손을 대는 듯했다.
당시 치안부에서 일을 본 강석현씨 (전의현단원) 증언에 의하면 건준의 치안부원들은 직업별 지역별로 자위대 비슷한 걸 조직해 일본인 가정을 마구 수색, 권총·일본도 등을 압수하기 도했고 양조장에서 술을 빼앗아 일반에게 나눠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또 일본사람들이 감춰 놓은 쌀이나 광목은 결국 한국사람의 것이니 모두 가져가도 된다는 생각으로 마구 집어가는. 지금으로 보면 이상한 약탈같은 광경이 별어졌다. 치안유지를 앞세운 치안대의 행동이 어찌나 지나쳤던지 18일 아부총독은 치안유지 협조요청을 취소하고 당시까지 무장이 해제되지 않았던 일본군의 조선군관구사령관 상월량부중장이『결코 경거망동하지 말 것이며 치안을 해치는 자에게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겠다』고까지 위협적인 포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공산당의 건준에의 참여가 조직적이었다기보다는 우익의 냉담으로 인한 자연발생적이었다고 보아야할 것이다.
내가 알기로는 공산당이 조직적으로 건준에 침투하기 시작한 것은 l차 개편 전후가 아닌가 한다.
이즈음의 어느 날 계동 홍선직의 집에 박헌영 등 몇몇이 모어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느닷없이 건준이야기를 했다.
그 때 홍모직의 입에서 『환골탈태라는 거야!』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역시 공산당의 모사꾼 다운 재치였다. 환골탈태란『뻐대를 바꿔끼고 태를 바꿔 쓴다』는 뜻으로 예전부터 몽양과선을 대놓고 있던 공산주의자들이라 그를 떠 받드는 체하며 그의 품속에 파고들어 이리 저리 마음대로 조종해보겠다는 의도를 함축성 있게 드러낸 것이다.
건준은 그 싯점에서 전국적으로 규모가 가장 크고 또한 총독부의 은근한 비호까지 받고있는 실권단체가 아닌가.
『장대방을 잘 이용하는 길이 공산주의자가 이기는 방법』임을 강조해오던 박헌영이 홍모식의 문구가 마음에 흡족했던지 대답은 안 했지만 좋다는 듯 미소를 흘렸다.
이 때부터 공산주의자들은 건준의 주도권을 잡으러 공작을 꾸몄다. 1차 결경된 부서를 이러 저리 트집잡아 1주일도 못된 8월27일 개편, 현식강으로 몽학과 민세는 그대로 두나 2부·1국 조직 대부분을 공산주의자들로 바꿨다.
어떤 사람들은 당시 건준내의 세력분포가 몽양측과 공산주의자들이 절반씩이 었다고도 보나, 실령 그 신분상의 세력이 그렇다 하더라도 공산주의자들은 박헌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수학적인 숫자를 넘어선 강력한 세력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개편 후 공산주의자들이 더욱 주도권 장악에 열을 올리며 민족진영을 제거시키는 공작을댈 이자 8월22일 그동안 형식상 대우를 받아오던 민세가 부위원장 자리를 물러났다.
이 때 개편된 부서를 보면 ▲위원장 여운형 ▲부위원장 안재홍 ▲부직부 정백 윤형직 ▲선전부 권태석 홍기문 ▲재정부 이규갑 정순용 ▲식량부 김재영 이황 ▲문화부 이여성 함상대 ▲치안부 최용달 유용현 이병학 장권 정의직 ▲교통부 이승복 양재리 ▲기획부 김준연 박문규 ▲후생부 이용설 이의직 ▲조사부 최철한 김야인 ▲서기국 고경흠 이중업 이상 ▼최성환 정화준 등으로 우익 측 인사라야 안재홍 김준연 이용설 함상동 정도고 나머지는 몽양계의 중도였거나 공산주의자들임을 알 수 있다.
민세와 몽양울 비교적 가깝게 지내온 조한용씨(서울거주)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두사람 모두 호인 인점에는 같았으나 의견상 몽양이 투쟁적이요 혁명적임에 비해 민세는 군자적이고 순응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세가 건준을 떠나게 된 것은 당시 그와 친분이 있던 우익인사들이 그에게 건준안에 공산주의 자들이 많고 또 그들이 주도권을 쥐고있으나 우익계로 위원수를 늘려 좌익계를 견제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건준에서 탈퇴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해 왔기 때문이다 (여운홍저 『몽양려운형』). 그러던 차에 민세가 우익편중의 1백35명의 확대위원을 선정해놓고 몽양에게 그 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하자 둘 사이에는 마찰이 있었다한다.
이에 대해 좌익계의·비난이 빗발치자 몽양은 타협안으로 그들에게 발언권을 줄 수 없다고 하자 민세는 크게 불만을 표시한 뒤 사퇴를 선언했던 것이다.
일단 민세가 물러가자 박헌영은 9월3일 민세 대신에 허혜를 끌어들이는 등 부서를 다시 개편, 거의 대부분을 공산주의자 일색으로 건준을 꾸몄다.
길성 18일 건준은 환골탈태를 모의했던 공산주의자들의 손에 완전히 넘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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