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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8명의 머나먼 ‘집으로 가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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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

영화 ‘집으로 가는 길’이 개봉 2주 만에 15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뒀다. 22일 기준 143만 명이다. 2004년 프랑스 오를리 공항에서 마약운반 혐의로 1년4개월간 감옥에 수감됐던 30대 주부 장미정씨의 실화를 토대로 한 영화다.

 외교부는 개봉 전부터 민감하게 영화를 주시했다. 시사회를 본 외교부는 제작사와 협의 끝에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인물의 상황이나 설정 등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자막을 넣게 했다. 하지만 개봉 후 불편한 기색은 여전하다. 외교부 게시판에는 하루에 몇 건씩 영화에 묘사된 외교부의 처신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외교부는 공개적으로 영화의 사소한 팩트오류까지 지적하자니 모양이 이상하고, 그냥 두자니 국민들의 오해를 사는 것 같아 난감한 눈치다.

 집으로 가는 길이 멀기만 했던 사례는 장씨뿐이 아니다. 지난 6일 필리핀에서 마약단속에 걸려 구금됐던 김규열 선장이 마닐라의 교도소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2009년 구금된 김씨는 2011년 11월 보석으로 석방됐다가 지난해 12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김씨는 무죄를 주장해 왔지만 3년에 걸친 재판 끝에 결국 항소심을 준비하다 사망했다.

 외교부는 “두 건 모두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재판결과도 유죄라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힘들었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범죄를 저지른 외국인이 재판을 받는 도중에 외국 대사관이 압력을 행사한다고 생각해 보라. 어쩌면 ‘주권침해’를 우려하는 외교부의 고민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영사인력 부족도 늘 언급된다. 전 세계 161개 공관에 영사는 300여 명. 이 중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인력은 40여 명에 불과하다. 외교부 관계자는 “최소 100명 이상이 필요한데, 20년간 제자리”라 하소연한다. 이 또한 이해는 간다.

 하지만 여건이 힘들다고 “할 만큼 했다”는 식은 곤란하다. 우리 헌법 2조 2항은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 이역만리의 차가운 감옥에서 우리 국민이 기댈 곳은 역시 국가밖에 없다. 최소한 현지에서 공식법정통역이 가능한 이들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주재국의 사법규정과 제도를 면밀히 파악해 법률적 조력은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6월 말 기준 해외 수감된 한국인은 1000명이 넘는다. 36개국 1088명에 이른다. 이들 중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바람에 집으로 가는 길이 막혀버린 사람은 없는지 외교부는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그건 영사 ‘서비스’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책임’이다.

정원엽 정치국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