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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남윤호의 시시각각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돼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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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남윤호
논설위원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있다. 얄팍한 인심을 야유한 말이다. 그럼 잘되고 못되고를 떠나 ‘그냥 되는 일’은 누구 탓인가. 예컨대 오늘 아침 평소와 다름없는 출근길은 어떤가. 그거야 늦잠 안 자고 서둘러 준비해 나왔으니 제때 출근한 것이라고 하면 그만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절반만 당연하다. 그 뒤엔 무수한 일들이 가려져 있다. 평소대로 출근할 수 있었던 게 과연 나 혼자만의 의지와 능력 덕분이었을까. 거기에는 지각했을 때 갖다 붙이는 변명 만큼이나 많은 이유들을 찾을 수 있다. 가족 중 어느 한 명도 응급실에 실려가지 않고 안녕한 덕분이고, 지하철과 버스가 파업을 하지 않은 덕분이고, 횡단보도 앞에서 급정차한 자동차가 나를 치지 않은 덕분이고, 다니는 회사가 문을 닫지 않은 덕분이고…. 그 ‘덕분’을 따지자면 한도 끝도 없다. 매일 출근하는 평범한 일상에서조차 말이다. 인사말로 가볍게 주고받는 ‘좋은 아침’은 시간이 되면 누구에게나 저절로 찾아오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 뒤에 숨자는 뜻이 아니다. 모든 게 운명이라고 체념하지도, 모든 걸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며 오만해지지도 말자는 얘기다. 세상 일이란 내 의지만으론 되지 않는다. 하면 된다고 하지만, 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 반면 되면 한다는 이가 있지만, 안 돼도 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마련이다. 의지만으로는 또는 여건만으로는 모자란다. 우리는 꼭두각시가 아니지만, 완벽한 자유인도 아니다.

 어차피 혼자 사는 세상은 없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돼 있다”고 했다. 그런 연결이 사람에 따라선 인연일 수도, 우연일 수도, 아니면 운명일 수도 있다. 각자 생각하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뭐가 됐든 그게 개인을 둘러싼 현실임에 틀림없다. 세상이란 모든 이들이 그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축을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흐름 아닐까.

 그렇다면 서로 틀어지고 맞부딪히는 사람과 집단들도 어디에선가 연결돼 있다는 뜻이다. 본질적으로는 각자 서로의 거울일 수도 있다. 싸가지를 분실한 진보와 염치를 상실한 보수가 꼭 그렇지 않나. 어느 편 거울에 서도 분노의 삿대질은 너와 나를 향해 똑같이 날아들고 있다. 툭하면 대통령 물러가라고 거품을 무는 쪽이나, 차제에 싹 잡아들여야 한다며 핏발 세우는 쪽이나 마주 보고 선 거울들이다. 마음에 안 드는 대통령이 하야하면 하루아침에 태평성대가 되나. 노조 간부 몇몇 잡아들이면 사회불만이 눈 녹듯 사라지나. 그런 극단은 또 다른 극단을 부를 뿐이다.

 국회에서도 다를 바 없다. 저속한 막말에 응답한답시고 더 냄새 나는 막말을 내뱉는 것이나, 골목상권 보호한다고 난리법석을 떨다 결국 골목권력 키워준 것 역시 그와 비슷하다. 오버는 오버를 부른다. 연쇄반응과 상승작용만 심해진다.

 궁극적인 책임은 궁극적인 원인이 있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흔히 무작정 제일 높은 사람에게 화살을 돌려 원흉으로 비난하곤 하는데, 참 못난 짓이다. 궁극적인 원인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지금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악다구니에는 우리 모두가 직접·간접으로 조금씩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게 맞다. 그 궁극적인 책임 또한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러니 우리 정치는 왜 이 모양, 이 꼴이냐며 한탄하지만 말자. 차라리 그런 정치인밖에 못 뽑은 우리 자신의 용렬(庸劣)함에 가슴을 치는 게 낫다.

 내일이면 성탄절이다. 하늘엔 축복, 땅 위엔 평화가 가득해야 할 날이다. 하늘의 영광까지는 몰라도 땅 위의 평화는 상당 부분 우리 손에 달린 문제 아니겠나. 물론 혼자 힘으론 안 되지만 모두가 마음 먹기에 따라 가능할지 모른다.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돼 있다.

남윤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