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최고 권력기관 된 Fed 출발은 '7인의 지킬섬 음모' 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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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열린 미국 Fed 설립 100년 기념식. 왼쪽부터 차기 의장으로 지명된 재닛 옐런 부의장, 폴 볼커와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 현 의장인 벤 버냉키. [워싱턴 신화=뉴시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출범 100년을 맞았다. 1913년 12월 23일 Fed가 설립됐다. 미국이 1776년 독립을 선언한 지 137년 만이었다. 한 세기가 넘는 세월 동안 미국엔 중앙은행이 사실상 없었다. 그 바람에 거의 10년마다 반복적으로 경제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1907년 공황도 그중 하나였다.

 그 즈음 이름부터 심상찮은 섬 하나가 역사의 무대가 된다. 조지아주의 부자 휴양지인 지킬(Jekyll) 섬. 인간의 이중성을 갈파한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주인공 이름과 같다. 1910년 겨울 상원 금융위원장인 넬슨 올드리치 의원과 재무차관보인 에이브러햄 앤드루, 투자은행 JP모건의 실력자 헨리 데이비슨 등 워싱턴·월가 실력자 7인이 지킬 섬에서 비밀리에 회동했다.

금융인 대표·이사 계획 수포로

 7인은 지킬 섬에서 1907년 경제위기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선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구체적인 설립 방안을 논의했다. 그들은 새로 세울 중앙은행의 대표와 이사 자리에 금융인을 앉히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지킬 섬의 음모’다. 하지만 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2년 뒤 민주당 출신인 우드로 윌슨이 당선되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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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슨은 대선 승리 직후 공화당과 월가 세력이 구상했던 중앙은행 법안을 완전히 뜯어고쳤다. Fed를 월가가 아닌 워싱턴에 두기로 했다. 이사도 월가 금융세력이 아닌 대통령이 지명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더 나아가 중앙은행 자체를 12개로 쪼갰다. 월가의 입김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테드 트루먼(72) 전 미국 재무차관보(Fed 수석 이코노미스트 출신)는 “음모와 반(反)음모가 상호 작용하면서 Fed는 출범했다”고 말했다. 지난주 본지와의 전화 인터뷰에서다. 그는 “석연찮게 출범한 Fed가 100년 만에 미국 중앙은행에서 글로벌 중앙은행으로 성장했다”고 했다.

“테이퍼링, 펀치볼 줬다 뺏는 격”

 글로벌 중앙은행은 100년 전 Fed 설계자들이 예상치 못한 일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Fed가 돈줄을 죄거나 풀면 세계 경제도 성장과 침체라는 선율을 그리며 따라 움직였다.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 모순이다. Fed는 철저하게 미국을 위해 설계됐다. 그러나 역할과 영향력은 세계적일 수밖에 없다. 트루먼 전 차관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 Fed가 미국 경제만을 보고 양적완화(QE)를 내년 1월부터 줄이기로 했다.

 “Fed가 글로벌 시장 참여자들에게 펀치볼(화채그릇)을 줬다가 갑자기 빼앗는 격이다(웃음). Fed의 존재적 한계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무슨 뜻인가.

 “미 의회가 법으로 규정한 Fed 의무는 달러 가치 안정과 미국 내 완전고용 달성이다. 하지만 Fed는 이제 이 목적에만 충실할 수 없는 상황이다.”

 - Fed가 또 다른 100년 동안엔 중국이나 한국 등 다른 나라도 감안하면서 정책을 펴게 될까.

 “지금까지 Fed 의 주 관심사는 미 경제였다. 이제는 다른 나라 경제를 더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이는 재닛 옐런(67) 차기 의장이 풀어야 할 숙제 중 하나다.”

 트루먼 차관보 입에서 옐런 이름이 나왔다. 그는 예일대 교수 시절에 옐런의 논문을 심사했다. 또 Fed에서 국제담당 책임자로 일할 때인 1977년에 옐런을 이코노미스트로 발탁하기도 했다.

 - 옐런이 첫 여성 의장이 된다.

 “그는 아주 똑똑한 인물이다. 예일대 여성 졸업자로선 처음으로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그는 단순한 경제학자가 아니다. Fed에서 경험을 쌓은 인물이다. Fed 업무를 꿰뚫고 있다. 학식과 실무를 모두 갖췄다.”

“옐런·피셔 노련해 잡음 안 날 것”

 - 스탠리 피셔 전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가 부의장에 임명된다고 한다. 옐런과 피셔 모두 강한 성격이어서 충돌을 우려하는 소리가 있다.

 “둘 다 노련한 사람이다. 잡음이 나지 않을 것이다. ”

 - 옐런의 통화정책 색깔은 어떨까.

 “잭슨홀 미팅(세계 중앙은행 총재 연찬회)이 열리면 가장 인기를 끄는 Fed 인물이 바로 옐런이었다. Fed가 법적인 한계 때문에 미 경제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만, 이 한계를 옐런이 보충해줄 것으로 본다. 한국 등 외국 중앙은행가들과 소통을 잘하는 Fed 의장이 될 것이다.”

 Fed는 출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큰 개혁을 했다. 첫 번째는 대공황 직후였다. Fed는 대공황을 예방하지 못했고 그 충격을 약화시키지도 못했다. 결국 1933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설치됐다. 통화정책 의결기구다. 지역 준비은행 총재들이 쥐고 있던 통화정책 권한이 FOMC로 이관됐다. 이 때문에 월가 입김이 더욱 약해졌다. 두 번째 개혁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6년에 이뤄졌다. 이때는 일자리 창출이 Fed의 의무로 추가됐다.

 최근 Fed엔 또 하나의 임무가 부여됐다. 금융시스템 안정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계기였다. 그만큼 Fed 권한이 막강해졌다. 대형 금융그룹을 감독할 수 있게 됐다. QE 때문에 Fed 자산도 최근 5년 새 9000억 달러에서 4조 달러로 불어났다.

 - Fed 위상이 설립 이후 최고조인 듯하다.

 “그만큼 위험도 크다. Fed 정책 담당자들이 자칫 실수하면 후폭풍이 클 수밖에 없다. 사실 이제껏 Fed는 많은 실책을 범했다. ”

 - 옐런 시대가 순탄치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인가.

 “옐런도 앞으로 4~5년 동안 크고 작은 실수를 할 수 있다. 옐런이 오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적응 기간을 예전 의장들보다는 줄일 것으로 보인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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