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朴대행 회담] 대화록·이모저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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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하실 말씀을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다."(노무현 대통령)

"안 지가 20년이다. 눈 감고 보더라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

盧대통령과 朴대행 등 한나라당 지도부의 두시간 오찬회동은 끝날 무렵을 빼곤 화기애애했다.

盧대통령이 남해가 지역구인 朴대행에게 "남해 출신인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을 2년 이상 장관으로 데리고 있어 총선에 출마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하자 朴대행이 "오늘 진짜 소화 잘 되겠다"고 했고, 盧대통령이 "朴대행을 괴롭힐 진짜 물건은 따로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을 정도였다.

盧대통령의 고향 김해가 지역구인 한나라당 김영일 사무총장도 "형님에게 지역구 민원은 지역구 의원에게 넘기라고 말씀해 달라"고 조크를 했다.

막판 12분 정도는 대북 송금 특검법에 대해 논박했다. 양측 모두 "결렬은 아니다"고 했다. 한나라당 박종희 대변인은 "여야 모두에게 유익한 회동이었다"고 자평했다.

◆특검 논란=盧대통령은 "특검법을 물론 하겠지만"이라며 특검법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여러 차례 자금 조성까지만 수사하고 북한과의 거래 관계는 형사소추를 면제하는 단서조항을 넣자고 했다. 이에 대해 朴대행은 고개를 저었다.

▶盧대통령=자금 조성과 관련된 부분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대통령을 가까이 모셨던 사람까지 가감없이 철저히 밝히되 외교적 신뢰를 고려해 송금 부분은 여야가 협의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

▶朴대행=특검법은 비공식적으로 민주당안을 수용한 것이다. 어차피 국내에서만 조사하게 돼 있다. 특검이 양심을 걸고 국익이 뭔지 판단해 수사할 것이다.

▶盧대통령=법이 공포되면 자의로 수사 중단을 하지 못한다. 중국에서 누굴 만났는지 조사하게 되면 북한과의 민감한 문제로 번지게 된다. 미주알고주알 나오다 보면 골치아픈 일이 생기게 된다.

▶朴대행=북한 관계를 조사하지 않으면 규명이 안된다.

▶盧대통령=북한과의 거래관계에서 나오는 것은 조사와 형사소추를 빼달라. 국무회의 하루 전인 내일(13일) 민주당과 한 줄 만들어 달라.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정치적 합의를 해달라는 얘기다. 한나라당에서 성명을 하나 내주면 좋겠다.

▶朴대행=우리가 수사 대상으로 하는 것은 남북 정상회담 직전에 있었던 세 건의 송금 사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5억달러 중 3억달러는 행방이 묘연하다.

▶盧대통령=하도 펄펄 뛰니….

▶김영일 총장=정 그렇다면 법안에 서명할 때 북한과의 거래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을 밝히면 되지 않겠느냐.

▶朴대행=거부권 정국으로 가면 예측 불허다. 대통령이 특검법을 통과시키면 우리도 국회에서 법안 심의나 정부 정책을 힘껏 돕겠다.

유인태(柳寅泰)청와대 정무수석은 "민주당이 특검 자체를 거부했으나 요즘 변화의 기류가 있다"며 오찬장을 나서는 한나라당 이규택(李揆澤)총무를 붙잡고 "민주당과 얘기 좀 해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정책 갖고 대결하자"=盧대통령과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국 현안에 대한 의견도 나눴다. 서로 "정책 갖고 대결하자. 한나라당이 반대할 법안을 준비하라 시켰다"(盧대통령), "누가 정치상품을 잘 파는지 경쟁하자"(朴대행)는 말도 오갔다.

▶이상배 한나라당 정책위의장=기업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달라. 몇대 기업 세무조사한다고 발표해 위축시킨다.

▶盧대통령=나도 대통령이 돼서 기분 좀 내려는데 왜 초장부터 분위기를 망치냐고 물어봤더니 공정위가 하나씩 하면 표적조사라고 해 매년 초 1년간 계획을 발표한다더라. SK수사는 이미 조사한 것이어서 말릴 수도 없고 표적수사의 의도가 없었다는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朴대행=다음 재벌기업이 삼성이나 두산그룹이란 얘기가 있다.

▶盧대통령=그런 소문이 어디서 나냐. 새로 짜인 검찰 지휘부에서 그런 순서를 짰을 리 없지 않으냐.

▶朴대행=한.미공조를 견고히 해달라. 북핵 문제로 국민들 불안이 많다.

◆"검찰은 꽉꽉 쥐었다"=盧대통령은 지난 9일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 대한 소회도 밝혔다. 그는 "검사들이 독한 마음을 먹고 나올지 몰랐다"며 "아주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그러곤 "장관이 봉변당하는 것을 보니 가만 있으면 안되겠더라"며 "검사들이 작전을 잘못 짜서 결과적으로 내가 덕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은 이번에 꽉꽉 쥐었다"며 "과거의 예를 보니 3년 지나니 모든 비리가 검찰에서 나오는데 나는 (검찰과)가까이 하지 않고 공정거래를 하겠다"고도 말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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