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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한된 무대의 무한한 확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작년 가을 연습에 들어가면서부터 연극계에 관심을 모으던 오태석 작·유덕형 연출의 『초분」은 예상했던 대로 신극 60년의 한국 연극계에 전에 없던 충격을 던져준 공연이었다.
현대사회와 인간 및 그 특유한 생리에 현미경식 투시만을 가해오던 작가 오태석이 그 시선을 문명에서 소외된 어느 섬으로 옮겨 그 곳을 지배하던 합리성 이전의 「질서」와 그 질서에 대립되는 합리적인 문명인의 「법」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죽음의 의식을 통해 투시해 보려한 것도 작가의 변신과 성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만한 사실이려니와 그보다도 더욱 비교적 난해한 이 작품을 하나의 입체적인 추상화로서 완벽하게 무대 위에 형상화시킨 연출자의 창작성은 제한된 무대의 가능성을 무한히 확대시켜 준 최초의 시도였음에 더욱 큰 의의를 갖는다.
이번 공연의 연출적 시도는 종합예술로서의 연극의 본질적 변화를 추구했다기보다 종합예술이라는 그 의미에 보다 충실함으로써 연극의 진수를 터득케 했다. 유덕형은 그에게 주어진 재료들을 그의 의도에 따라 과감하게 활용하고 특히 배우를 일개 기능적인 도구로서가 아니라 자신의 몸 전체로 새로운 체험과 맞닥뜨려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깨뜨리게 끔 함으로써 배우의 연기영역을 한층 높은 단계로 끌어올렸는데 이러한 느낌은 이 공연의 제의적 성격을 구체화하는데 불가피한 요건이었겠지만 거기에 동양적인 선과 색과 음의 조화 및 힘의 미학적 절제가 없었던들 성과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결함이 없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문제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제기한 점이 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이 작품의 성격과 공연의 「스타일」간의 위화감이다.
그 원인은 희곡에서 그 자체가 안고 있는 장애를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이 작품이 목적했던 신화적에 「브레이크」가 걸렸고 배우의 산문조 대사전달로 혼을 불러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한국의 작가와 배우가 앞으로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치명적인 과제로 「클로스업」되었다.
다음으로 연출자는 대립과 갈등을 점층시키고 예각화 하는데서 손이 무디어 「고기가 그물을 찢고」의 「클라이맥스」에서 보다 강렬한 충격과 탈각의 희열을 주지 못한 것은 매우 서운한 일이었다.
그러나 한국 연극이 오늘의 시점에서 『초분』을 계기로 크게 반성할 점은 연극행위의 합목적성과 그 행위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 및 비판이다. 그것은 연극하는 사람들의 구도적 자세와 시련의 인고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한상철<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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