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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호 기자의 레저 터치] 올레길 수입한 일본, 모방 끝내고 '일본화'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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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또 올레길이 났다. 이름하여 규슈올레 3차 코스 개장이다. 지난 14일에는 오이타(大分)현에 고코노에 야마나미(九重 やまなみ) 코스가, 15일에는 사가(佐賀)현에 가라쓰(唐津) 코스가 열리면서 규슈(九州)는 2012년 2월 1차 개장 이후 모두 10개의 규슈올레를 거느리게 됐다. 길이만 130㎞에 이른다.

규슈올레를 취재할 때마다 일본인이 올레에 쏟는 정성에 놀란다. 개장식이 열리는 마을에 도착했을 때 마주친 일본인의 표정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은 정말 규슈올레를 유치해 기쁜 얼굴이었다.

우리나라의 지역 관광공사에 해당하는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지난 2월 2차 개장을 앞두고 규슈의 7개 현(縣·우리나라의 ‘도’에 해당)에 지침을 내렸다. “현마다 규슈올레를 2개 코스 이상 신청하지 말 것.” 규슈관광추진기구가 규슈올레를 심사하는데 첫 개장 이래 너무 많은 지역이 규슈올레를 내겠다고 몰려 선정 작업에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이번 3차 개장에 신청한 코스는 모두 14개였다. 규슈관광추진기구는 심사를 통해 4개 코스로 압축했고, 제주올레 사무국이 4개 코스를 답사했다. 답사 결과 2개는 이번에 개장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고, 나머지 2개는 내년 3월로 개장을 늦추기로 결정했다. 포장도로 구간이 너무 많거나 길이 특정 관광지에 몰려있기 때문이었다.

규슈관광추진기구에 따르면 규슈올레를 방문한 한국인은 2만4000여 명이다. 여행사 실적만 계산한 것으로, 개별 자유여행자를 합치면 최소 4만 명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규슈올레를 방문한 일본인은 최소 3만 명으로 파악한다.

규슈올레가 반응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인기가 아주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올레에 열광한다. 일본 전역이 규슈올레를 배우려고 규슈를 방문한다.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北海道)에서도 규슈를 찾아왔단다. 지난달에는 아베 신조 총리의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아마쿠사(天草) 코스를 걷기도 했다.

이번에 개장한 2개 코스는 이미 한두 번 심사에서 떨어진 경험이 있었다. 이들 지역의 공무원은 이미 선정된 다른 지역의 규슈올레를 걷고, 한국의 제주올레도 걸으며 자기네 단점을 보완해 이번에 선정될 수 있었다. 심사에서 떨어지면 담당 직원이 울음을 터뜨리는 건 이제 흔한 일이고, 규슈관광추진기구에 정식으로 항의하는 지역도 있었단다. 일본은 왜 올레길에 열광할까. 규슈관광추진기구 측의 설명이다.

“1차 개장 때 선정된 오쿠분고(奧豊後) 코스는 정말 오지에 있잖아요. 그 산골에 도시락 서비스가 생겼어요. 동네에서 만든 도시락을 길을 걷다가 받아먹을 수 있는 거예요. 이런 작은 변화가 규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어요. 인적도 없는 외진 곳이었지만 지금은 규슈올레가 있는 동네라고 자랑을 해요. 실적은 아직 미미하죠. 그러나 일본에서 규슈올레 하면 걷기여행의 대명사처럼 통해요. 일종의 브랜드가 된 셈이죠.”

왜 부러울까. 올레길은 분명 우리 건데. 무엇이든 모방하고 무엇이든 자기네 것으로 만들어내는 일본은 이제 올레길도 자기네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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