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창조적인 파괴력 제12차「세계연극의 날」기념「세미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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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제12차「세계 연극의 날」을 맞아 ITI 한국본부는 27일 하오 4시「드라머·센터」에서 기념「세미나」와 기념공연을 각각 열었다. 「세미나」는「국가의 교육 및 사회발전을 위한 창조력으로서의 극예술」을 주제로「연극의 창조성과 효과적 기능」(이상일·연극평론가), 「아마추어 연극의 사회적 기능」(김문환·연극평론가), 「연극과 지역사회발전」(차범석·극작가)이 발표되었고 「아라발」각·김정옥 연출『기도』와 봉산탈춤이 공연되었다. 또 이에 앞서 ITI「파리」본부는「루키노·비스콘티」(이·연출가)의 세계 연극의 날 국제「메시지」를 보내왔다. 이「메시지」는 현대의 관중은「매스·미디어」의 범람에 지쳐 진정한 예술성을 갈망하고 있기 때문에 연극은 무대극 본연의「리얼리티」를 찾을 때 앞길은 밝은 것이라고 했다. 「연극의 창조성과 교육적 기능」을 발표한 이상일씨는 연극의 창조성은 관객을 잠재우고 그들의 정열을 정화하는 형식에서 탈피, 관중을 깨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각성의 연극은 관중을 분기시킴으로 해서 가장 창조적이며 천부의 교육적 기능을 다하는 것이며 그 창조성이 바로 교육적 기능이라고 했다.
연극이란 원래는 파괴력이며 그러나 창조적인 파괴력이라고 말한 그는 연극적 창조성을 모방 예술로서의 창조성, 반영 예술로서의 창조성, 반영예술로서의 창조성으로 나누었다.
인간을 각성시키고 의식을 굳게 하는 연극, 각성된 민중을 교육하는 연극이 될 때 연극은 창조적이 되는 것이며 연극은 관객들이 연극을 통해 사회를 이해하고 의식하며 또 비평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연극이 이러한 창조적 힘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극작가는 극장과 유리된 문인이 돼 있고 극단은 극작가를 잃어버리고 있으며 또 일정한 수준의 관객이 조직되어 있지 않아 창조력을 상실함으로써 연극은 주변 예술에 분해되고 있다는 것이다.
연극은 원래의 무의 연극으로 돌아가야 하며 그럴 때 참다운 연극은 형성될 수 있으며 또 원래의 창조성을 살리게되고 교육적 기능도 다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아마추어 연극의 사회적 기능」을 발표한 김우환씨는「아마추어」연극이 갖는 순수성과 미숙성이라는 이중성은 한국 연극 전반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연극은 올바른 축제가 주는 긴장해소의 기능을 가진 반면 잘못하면 마취제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한 그는 예술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책임을 특히 강조했다.
연극은 관객의 참여를 여건으로 하고 있어 민중의 진정한 참여의식을 고취하며, 연극은 인물 상호간의 대화로 구성되어 참다운 대화를 통한 민주주의를 구현하며, 또 연극은 역할학습의 기능을 가져 인간이 사회학 과정에서 갖는 중요한 기능을 알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연극은 참여정신·대화정신·다양한 역할을 이해하는 정신을 길러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창조성과 교육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극이 이러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업성이 문제가 되는 전문극단 보다는「아마추어」극단이 필요하며 「아마추어」극단은 순결성을 지키고 기존 극장이나 극계에 끼어 들기 전에 관객속에 깊이 뛰어들어 새로운 관객, 새로운 연극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연극과 지역사회 발전」을 발표한 차범석씨는 연극은 설득력·전동력·감화력이라는 본질적 특성을 가졌기 때문에 연극이 지역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적 수단방법으로 가장 적합한 연극이 지금까지는 가장 등한시되고 천대를 받아왔으며 이렇게 훈련이 안된 사람이 모여서는 연극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무엇보다 연극 인구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또 현재의 지방 연극 운동은 몇몇 앞선 연극인이 대중과는 전혀 분리된 상태의 자기도취에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설득력 없는 연극은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먼 앞날을 위해서 우선 학교 연극부터 개발해야 하며 이렇게 훈련된 사람이면 직장과 마을 교회에서 연극은 자연스럽게 이루어 질 수 있다.

<인간의 본질적 사건만이 연극의 중심소재>ITI「파리」 본부서 보내온「루키노·비스콘티」의「메시지」
이제 연극에는 진실과 절대성에의 새로운 요청이 일고 있다. 「매스·미디어」의 뒷전에 밀려나 소멸될 지경에 이르렀던 연극이「리얼리티」와 진심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정체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연극은 우리의 생을 가장 심오하고, 위태롭고, 비극적이고, 신비로운 곳에서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잘못 생각하여 연극이 경쟁상태에 있다고 본「매스·미디어」가 오락, 소일, 도피에 속하는 모든 것을 거의 차지했다.
이런 것이 결여되어 연극은 쇠퇴한 듯이 보이지만 오히려 연극은 그럼으로써 살쪘고 기력을 얻었다.
이 같은 주요하지 않은 일에서 해방된 연극은 이제 중요성을 지닌 큰 주제를 다룰 수 있게 됐고 본질적으로 연극은 인간적 수단임을 재확인했다.
오늘날 연극에는 인간의 본질적인 사건, 불변의 인간관계, 신비에 찬 초월과의 만남만이 중심소재로 남았다.
자신과의 만남을 위해, 자신의 운명과의 만남을 위해,「리얼리티」와 상상이라는 이중의 힘을 지닌「게임」속에서 자신의 신앙과 감정을 시험해 보기 위해 사람들은「지하묘지」로 부르던 극장을 다시 찾게 됐다. 변두리로 밀려났던 연극은 이제 다시 집단적 경험의 중심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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