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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와 「요강」과 「초가집」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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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P자와 O자를 붙여「PO」. 독자 중에 이런 단어를 알고 있는 분 있으면 영어단어 실력이 굉장하다고 자부해도 괜찮다. 난 어쩌다 팔자 덕에 몇 년을 영어를 씨부렁거리고 살아왔다는 주제면서도 영어에 그런 단어가 있었는지 미처 몰랐다. 물론 「요강」이란 뜻이다.
주로 개구장이들이 쓸 때에 그렇고 어른들이 사용할 때엔 「방안의 항아리」(Chamber Pot)로 좀 길어진다. 길건 짧건 간에 하옇든 요강이란 말이다.
불 안땐 굴뚝 연기 안 난다. 그런 단자가 있다는 건 영국에서도 요강들을 꽤 쓴다는 얘기다.
그야 누구나 다 쓰는건 아니다. 신분이 중류급 이상쯤이 돼야 쓴다 .실상 상류집안 아니고선 요샌 찾아보기 어렵다. 겉에 사기를 입힌 당제로 된 것, 은제에다 고운 무늬를 새겨 논 놈. 요강의 유형 그 시대적 변동 등 한마디로 「요강고」에 관해 몇 마디쯤 뇌까릴 줄 알아야 상류사회 사랑방 한담에 한 다리 낄 수 있다-하면 믿지 않을는지 모르지만 정말이다. 기막힌 얘기다.
아, 우리의 경우에야 엄동설한 뒷간에 가려면 얼어붙은 마당을 건너야하는 번거로움이라도 있지. 영국의 경우엔 침실과 변소가 같은 지붕 밑인데다가 엎어지면 정말 코가 닿지 않느냐.
그러나 할말은 물론 있다, 대관절 문명이란 뭐냐고 그들은 묻는다.
인간이 조금이라도 편하고자 안간힘을 써온 결과의 누적이다. 요강은 그게 편하고 이한 것이기 때문에 생겨난 거다…운운.
초가집이 그렇다. 타향살이에 질려 초가집 방에 요강이나 들여놓고 고향기분이나 내 볼까나 하고 「런던」근교 초가촌 복덕방에 가서 집 값을 물어보니까 맙소사, 자그마치 벽돌집의 곱절을 달란다. 까닭이야 간단하다.
여름에 선선하고 겨울에 훈훈하고 볼품 우아하고 그러니까 요새 유행어로 합리적이고…. 그러니, 값이 비싸 마땅하다. 아무리 생각해봐야 호주머니 사정이 그렇지 않아 복덕방 영감이 동양의 부호가 온 줄 알고 내놓은 차 한잔 얻어 마시고 나와 버렸다. 『에라, 영국귀족으로 태어나질 못했으니 내 고향에나 돌아가서…』하고 혼자 중얼거리는데 서울에서 온 신문기사가 마음에 걸린다. 「초가집 없애자, 요강 없애자」하는. 아마, 내가 기사를 잘못 본 게지. 어쩌다 요강이나 초가집이 상징했던 빈곤을 타파하자는 거지, 덮어놓고 모조리 없애자는 얘기였을라구? <런던=박중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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