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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된 한우 사골 … 펄펄 끓는 곰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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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11일 한 TV홈쇼핑 채널에 곰탕 팩이 상품으로 등장했다. 한우전문업체 ‘다하누’가 100% 한우 곰탕으로 내놓은 이 제품의 가격은 13개들이(26인분) 한 박스에 3만9900원. 1인분으로 계산하면 프리미엄급 라면 한 봉지 가격과 비슷한 1500원씩에 판매된 셈이다. 1시간으로 예정된 방송 도중 이 제품은 완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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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곰탕의 원료인 한우 부산물 가격이 폭락하면서 식품업체들이 잇따라 곰탕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느린부엌·강강술래 등 중견 식품업체와 고삼농협이 100% 한우곰탕을 파우치 제품으로 만들어 출시했다. 대형 유통업체들도 잇따라 PB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마트는 PB 상품 우리한우 사골곰탕을 출시해 1주일 만에 3만 팩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롯데마트와 홈플러스는 각각 ‘프라임 한우사골곰탕’과 ‘푹고운 사골곰탕’을 출시해 대응하고 있다. 다하누의 경우 파우치 제품 외에 한우 곰탕 프랜차이즈 사업에도 뛰어들어 전국 200호점을 목표로 가맹점을 모집 중이다.

 곰탕 원료인 사골·꼬리 등 소 부산물 가격은 10년 전에 비해 거의 10분의 1수준으로 폭락했다.

 사골의 경우 2003년 ㎏당 2만5000원에 거래됐으나 현재는 3700원이면 살 수 있다. 축산업계 관계자는 “한우 한 마리를 도축했을 때 나와야 하는 수입이 정해져 있는데 부산물 가격이 급락하고 있어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안심이나 특수 부위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됐다”며 “부위별 가격의 양극화로 곰탕이 수익성 높은 제품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소 한 마리를 도축하면 전체 중량의 50% 정도를 우족·사골·꼬리 등 부산물이 차지한다. 안심·등심·채끝처럼 구이용으로 인기를 모으는 부위는 전체의 7% 정도에 불과하다. 부위별 가격 양극화로 안심·등심·채끝의 세 부위가 소 한 마리 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03년 30%에서 올해 현재 45%까지 치솟았다. 부산물 가격 폭락과 더불어 식문화의 변화도 곰탕 외식사업이 달아오르는 원인이 됐다. 곰탕은 재료를 물에 담가 피를 뺀 뒤 밤새 고아야 하기 때문에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된 요즘엔 ‘집에서 만들어 먹기 곤란한 음식’이 됐다. 실제 대형마트의 명절 선물세트 순위 목록에서도 꼬리나 우족이 순위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됐다. 한 대형마트는 최근 한우를 3만원어치 이상 구매하는 고객에게 잡뼈를 덤으로 제공했지만 가져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외식업계 관계자는 “주거형태의 변화로 곰탕도 김치처럼 사서 먹는 가정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 조사기관 AC닐슨이 지난 9월 실시한 시장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레토르트 국물요리 시장은 320억여원으로 조사됐다. 이 중 곰탕에서는 오뚜기가 시장점유율 81.5%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오뚜기의 경우 국내 소 부산물의 가격이 안심·등심과 비슷하던 1998년에 팩 제품을 출시하면서 공장을 뉴질랜드에 짓고 현지 원료를 사용해왔다. 오뚜기 관계자는 “국내에 100% 한우 곰탕 제품이 잇따라 출시되는 현상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며 “소 부산물 가격이 장기적으로 낮게 형성되는지 지켜본 뒤 원재료 공급처와 생산지 등을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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