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산 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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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아메리카」나 「유럽」의 도시들은 아름답다. 계절마다 색다른 꽃이 피며, 언제나 푸르르다. 자연과 인공의 조화, 전통미와 현대미의 조화, 인간과 문명의 조화, 말하자면 이런 「하머니」가 인간의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 그것은 자연의 애착에서 비롯되는 감정이다.
서독의 「함부르크」는 2차 대전 중 폭격으로 거의 잿더미가 되다시피 했었다. 오늘 이 도시는 마치 공원 속에 도시를 설계해 놓은 모형처럼 아름다운 곳이 되었다. 「알스터」호반의 자연은 하나의 예술적인 경지를 이루고 있다. 푸른 숲 속에 드문드문 조각이 서 있는가 하면, 한편에는 아이들이 「불」을 가지고 즐겁게 노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녹지대는 오로지 시민의 자치 능력과 애향의 정신에서만 무성할 수 있었다. 가로수는 저절로 시드는 일을 제외하고는 결코 학대를 당하지 않는다. 시민들은 당연히 이 나무들을 자신의 정원수처럼 가꾸고 보호할 줄 안다.
모든 국민학교에선 자연에 대한 존중심을 가르쳐 준다. 소년들은 공연히 가로수를 비틀고 흔드는 일이 없다. 그런 것은 학교교육뿐 아니고, 가정교육으로도 금지된다.
그런 교훈과 인간성에서 도시의 숲은 마음놓고 자랄 수 있다. 그런 녹지대를 보면 인간의 마음도 어느새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건강한 사고와 건강한 사회생활은 이렇게 자연의 품에서 시작된다.
도시의 녹화뿐이 아니다. 산림의 경우도 같다. 녹화의 제1조는 보호에 있다. 수목은 꺾지 않으면 자란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자연의 순리이다.
우리의 강산이 황폐한 것은 산림을 학대하는 데에 유일한 원인이 있다. 모든 자연은 손상을 입지 않는 한, 하루아침에 황폐하는 일은 없다.
자연은 또 하루아침에 건설되거나 복구할 수도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따라서 인간의 보호를 받지 않으면 그들은 일로 폐허의 지경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주변을 보면 숲은 조용히 안식을 취할 시간이 없다. 동면을 제외하고는 충해에 시달리고, 인간에 시달린다. 서울 근교의 수목들은 하나같이 인간의 야속한 손때가 묻어 있고, 깡말라 있다. 기름지고 윤기가 흐르는 건장한 자연들이 아니다. 수목들에도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히스테리」일 것 같은 느낌이다.
충해의 경우는 더욱 한심하다.
당국의 집계에 따르면 전체 임야의 13%가 각종 해충의 침해를 받고 있다. 그 구제 특효약에 1천만 원의 현상금이 붙을 정도로 다급한 상황이 되었다.
서울시는 올해부터 서울 근교일 전지역을 제외하는 입산 금지령을 내렸다. 주말 산책을 즐기는 시민에게는 더 없이 답답하게 되었다. 그러나 『저스트·모먼트!』(잠깐만 기다리시오). 우선 자연의 건강을 회복시켜 놓고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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