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에 막힌 수소전지차 보급 … 암 걸릴 확률 계산기 앱도 좌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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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정창욱 교수가 개발한 전립선 암 발견 확률 계산 앱. 의료기기로 분류돼 배포가 중단됐다. [사진 정창욱 교수]

서울대병원 비뇨기과 정창욱(39) 교수는 지난 4월 전립선암 위험도를 계산하는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었다. 환자의 나이와 특이항원 수치, 전립선 크기 등을 입력하면 전립선암이 발견될 확률을 알려주는 앱이다. 서울대 계열 병원 환자 5000여 명의 데이터를 활용해 제작했다.

 하지만 앱이 공개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환자의 진단·치료에 쓰이는 의료기기에 해당하니 배포를 중단하라”고 연락이 왔다.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의료기기는 허가 받은 의료기기 제조업체만 만들 수 있다. 정 교수는 “환자의 직접 치료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의사들의 확률 계산을 돕는 용도”라며 이의를 제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앱 배포를 포기했다. 그는 “다양한융복합 연구를 막는 과도한 규제”라고 말했다.

 이르면 내년부터 이 같은 규제들이 사라질 전망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17일 산업통상자원부·식약처 등과 함께 “창조경제의 실현을 막는 과학기술 규제 개선방안을 마련해 국무회의에 보고했다”고 밝혔다. 미래부는 지난 9월 민관 합동위원회를 만들어 총 173건의 규제 개선과제를 발굴했다. 이 중 18개를 우선 추진 과제로 선정해 이날 공개한 것이다. 각 과제는 시급성 등을 따져 단기(1년)·중기(3년)·장기(5년)로 나눠 이행실적 등을 점검할 예정이다. 정 교수의 앱은 단기과제(모바일 의료용 앱 규제 정비 분야)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정 교수는 “늦었지만 환영할 만한 일”라며 “미국 식품의약국(FDA)처럼 모바일 의료용 앱에 대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수소연료전지차(FCV) 충전용 수소저장용기에 대한 규제도 개선된다. 현대차는 지난 3월 세계 최초로 FCV 투싼ix의 양산을 시작했다. FCV는 수소와 산소를 결합해 만드는 전기로 달리는 친환경차다. 투싼ix는 700bar 압력으로 수소를 한번 충전하면 약 600㎞를 달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차에 수소를 채울 수 있는 충전소 구축이 늦어져 보급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현재 수소충전소는 전국에 15곳밖에 없다. 그중 투싼ix에 맞는 700bar 압력 충전시설은 단 세 곳뿐이고, 이곳에서도 수소를 저장하는 데 400bar 용기를 쓰고 있다. 충전할 때는 압축기로 700bar로 재가압을 해준다. 이유는 법 때문이다. 현행 고압가스안전관리법은 안전을 위해 금속 압력용기만 쓰도록 하고 있다. 기술 발달로 유리섬유 등 첨단 복합재료 제품이 나오고 있고 투싼ix에도 이런 용기가 탑재됐지만, 충전소에선 여전히 금속 제품만 쓰도록 돼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 규제도 단기 개선과제로 선정해 풀기로 했다.

 수소 제조장치 제조업체 이엠코리아의 정현석 부장은 “현재 금속으로 된 700bar 압력용기를 만드는 곳은 외국업체 1~2곳뿐이다. 제품 구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라도 복합재료 용기를 쓸 수 있게 해줘야 한다”며 정부 결정을 환영했다.

정부는 이 외에 ▶19개 부처가 제각각 운영 중인 연구개발 관련 총 397개 법령 정비 ▶연구비 사용금지 항목 53개→33개, 정산 제출서류 36개→23개 축소 ▶10만원 이하 소액 연구비 집행절차 간소화 ▶연구개발서비스 기업의 기술료 100% 감면 등도 추진키로 했다.

신준호 미래부 과학기술정책과장은 “민간 옴부즈맨을 위촉해 앞으로도 상시적인 규제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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